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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Dec 21. 2021

울보지만 괜찮아

눈물은 생리현상일 뿐

나이가 들면 눈물도 마른다더니 다 거짓말인가 보다. 많은 일을 겪다 보면 덤덤해지고 눈물 날 일도 줄어들 줄 알았더니 마흔이 넘어서니 되려 눈물이 많아져서 TV에서 누가 울면 따라 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려서는 잘 울지 않는 편이었지만 고백하자면 어릴 때도 나는 울보였다. 아기 때부터 방긋 웃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는 모친의 말을 들어보면 날 때부터 울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울지 말라고 혼나거나 "쟤 또 운대요~"하는 놀림을 받기 싫어서 눈물을 꾹 참는 편이었을 뿐이다. 슬퍼도 눈물이, 화가 나도 눈물이, 억울해도 눈물이, 무서워도 눈물이, 심지어 너무 지루해도 눈물이 나곤 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울보였지만 눈물을 잘 참는 편이었다. 꾹 참고 이야기가 끝나거나 상황이 지나가면 재빨리 집에 뛰어들어가거나 몰래 화장실에 숨어서 울곤 했다.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약한 꼴을 보이는 것, 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태생부터 울보인 것을 어쩌랴. 사회에 나오고 더 예민하고 무섭고 분노할 일들을 만나고도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참고 할 말 하고 처리할 일 처리하는 멋진 사람이 되려고 애썼지만, 억지로 눌러 참는 눈물은 사지를 떨리게 만들고 생각을 꼬이게 만들었다.


눈물을 참는 것은 흐르는 물에 모래로 둑을 쌓는 일과 같았다. 계속해서 모래를 쏟아부어 막다가 둑이 터져버리면 물살은 더 거세고 파괴적이었다. 쉽게 시작된 눈물이 쌓여서 터져 나올 때에는 역으로 감정적인 흥분까지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그지경에 이르면 죄다 엉망진창이다. 눈물이 폭발하고 감정은 흥분상태로 스스로도 무슨 말인지 모를 말을 쏟아내게 되고, 상대방은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하며 깜짝 놀라며 말려야 하나 화내야 하나 미안해해야 하나 혼돈의 도가니에 빠진다.


태생부터 울보인 것을 어쩌랴. 이제는 전략을 바꿨다.


눈물이 시작될 때, 사실 감정적으로는 약간의 동요가 있을 뿐 큰 문제가 아닐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냥 눈물을 흘려버린다. 한 손에 휴지를 들고 눈물을 닦아가면서 그냥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물으면, 그저 '눈물이 많은 편이에요'하고 인정하거나 '눈물샘에 문제가 있어서요'라고 말하고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크게 눈물이 터질 때도 마찬가지로, 그냥 울기로 했다. 참으려다 격앙되어 사고 치는 것보다는 그냥 울보인 편이 나은 것 같다.


어른들의 사회에서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대부분 답답하고 짜증 나더라도 일단은 잠시 멈춰준다. 그것은 배려다. 울보인 나 때문에 대화가 혹은 일이 중단되는 것이 민폐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배려를 감사히 받기로 했다. 대신 눈물이 그치고 진정이 되면 꼭 사과를 하고 배려에 감사하기로 했다. 사과와 감사는 울보에게 꼭 필요한 미덕이다.


눈물 억제를 중단했더니 예민한 상황들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대신 그 꼴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이제 내가 울면 걱정하기보다 놀리기 바빠지긴 했다. 놀림받을 수 있는 사이라니, 찐득하게 친해지는 기분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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