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

가버리고 나면 어쩔 수 없지.

by lagomji
brunch_4.jpg 엄빠사랑 한가득 냠냠. drawing by lagom_ji



집에서 살고 있는지가 어언 6개월 정도 되었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좋고, 소중해서 - 약간의 마찰들이 없진 않지만 - 나중에 떠나야 할 때 어떡하나라는

괜한 생각을 가끔 할 정도이다.


사실 대학교를 가면서 집을 떠난 케이스로, 처음엔 그저 들뜬 마음 한 가득 인 아이였다.

한 번씩 틈이 생기면 집을 내려가는데, 그러다 보니 집이 친구 집 같고 잠깐 들렀다가는 곳처럼 느껴졌지만,

어느 때부턴가 마음 한편에 찡함을 지니고 있기 시작했다.


집에 내려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올라가야 할 때에 서로 덤덤하게,

나는 짐을 챙기면서 웃으며, 엄마, 얼른 가야겠다. 하면,

엄마도, 그래, 빠진 거 없이 잘 챙기고 얼른 안 늦게 올라가.


방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확인하는 찰나,

내가 온 날 정리되어 있던 그대로 다시 정리를 해두고 나가는데, 미묘하게 다른 거 같지?

하나 뒷생각 할 겨를 없이 행여 늦을까 후다닥 나간다.


적당히 시간 맞춰 탄 기차 속에서 나는 그 찡함을 느낀다.

빠진 것 없이 다 챙기다 못해 엄마가 더 챙겨줘서 가득 가져가는데,

내가 집에서 나와버린 뒤에 집에 남아있는 그 자리는 챙겨 올 수가 없더라는 거다.


아, 나는 떠나는 사람이고,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내가 가버리고 난 자리의 티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싶었다.


그때는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건가. 하며 씁쓸해했지만 지금은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인 상태다.

이로 인해 나는 지금의 캥거루족 생활에 대해 철없이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썩 어른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감사함을 느껴보지 언제 느껴보겠어.라는

한량스러운 마음으로 감사하게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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