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은 특별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부모님이 더 이상 함께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떨까? 설명도, 작별 인사도 없이. 단지 어제와는 다른 침묵만이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라 열 번도 넘게 반복된다면, 당신의 삶은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이것이 바로 내 이야기다.
삶은 때로 우리가 상상조차 못 한 모습으로 덮쳐온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채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생의 예측 불가능함이 때로는 설렘과 모험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정의 해체, 폭력, 빈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상실감. 이런 것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우리의 성장을 따라다니며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삶에 깊은 상처를 새긴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내 유년 시절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버려짐’이다. 열 명의 새어머니가 스쳐 지나갔고, 아버지의 주먹과 배신이 일상이었으며, 가난은 늘 우리 집 문턱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 모든 아픔이 내 삶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때로는 이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 상처들과 씨름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환경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절망에 잠겨 현실을 외면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듯,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성인기의 심리적 문제, 사회 부적응, 심지어 범죄 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뉴스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부모에게 버려져서”, “어린 시절 폭력을 당해서”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려 퍼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버림받은 인생, 망한 인생, 끝난 인생이야. 더 망가질 거야. 내가 얼마나 망가지는지 한번 보여줄게.”
복수심과 반항심이 뒤섞인 절망적인 외침.
나도 그랬다. 심각한 범죄까지는 아니었지만, 내면의 목소리는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과거의 상처를 핑계로 삼았다. 그게 편했으니까.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이런 생각의 뿌리를 ‘수치심’이라고 정의한다. “나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들이 나와 관계 맺을 가치가 없다고 느낄 것”이라는 두려움.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수치심은 중독, 우울증, 폭력, 자살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자신이 자라온 환경을 탓하며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남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공격적이거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고통과 상처 앞에서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서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그 고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낸다.
이는 특별한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이런 깨달음이 떠올랐다.
“나는 버림받았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야.”
‘버림받았어’에서 끝나면 무너진 것이지만, 버림받음이 인생의 마침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못나거나 환경이 열악해도 인생이 꼭 망하는 건 아니구나.”
반대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위대하다고 그 자녀가 자동으로 위대해지는 건 아니구나.”
내 이야기는 열악한 환경이 반드시 개인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통념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본보기들이 넘쳐난다. 최근 대통령이 된 이재명을 보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온 시련들을 생각해 보면, 그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이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놀라운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심리학자들은 환경 자체가 아닌 개인의 내적 자원과 인지적 전환에 주목한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적응하고 성장하는 능력을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 부르고, 충격적인 사건 이후 오히려 삶의 긍정적 변화를 경험하는 현상을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고 한다.
고통이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쉬울까,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쉬울까?”
환경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부모를 바꿀 수 있다면, 경제적 여건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 생각은 다르다. 우리 마음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돈도 들지 않고, 엄청난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다. 물론 생각을 바꾼다고 환경이 즉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경을 바꿀 힘은 생각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설령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힘 역시 생각의 전환에서 나온다.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이 용기의 가장 정확한 측정치”라고 말한다. “불완전하다고 말할 용기”,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할 수 있는 연민”,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보여준 결과로 얻게 되는 연결감”을 강조한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전심전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취약성을 완전히 포용한다”라고 한다. “자신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들이 자신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또한 생각의 전환이다. 주변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다른 사람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힘든 일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용기를 갖는 것이다.
내게 어떤 약점과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삶은 바뀌기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크기와 형태는 다르지만, 어려움은 모든 인간 삶의 일부다. 나도,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상처에 갇혀 절망의 늪에 빠져들 것인가, 아니면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앞으로 나는 나 자신의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작은 씨앗이 되기를 바라면서.
“버려진”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던 유년 시절부터, 여러 명의 새어머니들,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 그리고 가난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나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픔이 창피하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강점이자 매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특별한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위대함은 위대한 사람이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애쓸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쓸 글들을 통해 당신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당신만의 특별한 무기로 만들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길 바란다.
평범한 일상의 꾸준함이 모여 결국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는다. 내 이야기가 당신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에는 온전한 회복과 성공으로 이끄는 통로가 되기를 확신한다.
당신의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가장 소중한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당신에게 위로가 되듯이, 당신의 삶의 이야기도 당신 스스로에게, 그리고 옆의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