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에서 격려로
새벽 3시, 잠에서 깼습니다. 낮에 있었던 실수가 떠올랐습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바보 같이."
"다들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했겠지."
"역시 나는 안 돼. 항상 이래."
머릿속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가슴은 답답해졌습니다. 새벽 3시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니 지친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 목소리.
"못생겼어. 늙어 보여. 한심해."
출근길 내내 나 자신과 싸웠습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쳐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와 함께 삽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심지어 꿈속에서도 함께하는 존재.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가장 오래 함께할 이 존재를, 우리는 가장 가혹하게 대합니다.
친구가 실수했다면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라고 위로하면서,
내가 실수하면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지?"라고 채찍질합니다.
동료가 실패했다면 "최선을 다했잖아"라고 격려하면서,
내가 실패하면 "더 잘했어야 했어"라고 후회합니다.
왜일까요? 왜 우리는 자신에게만 이토록 잔인한 재판관이 될까요?
자기 비난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낯익은 톤이 있습니다.
"또 실수했구나."
"왜 남들처럼 못하니?"
"실망스럽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입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주 오래전, 작고 여린 내가 들었던 말들입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순간들. 실수하면 버려질까 봐 두려웠던 순간들. 있는 그대로의 나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던 순간들.
그 목소리들이 우리 안에 새겨져, 이제는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마치 상처가 흉터가 되듯이, 들었던 비난이 자기 비난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작년 겨울, 특히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도 잘 안 풀리고, 관계도 어그러지고, 모든 것이 제 잘못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새벽, 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문득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를 계속 비난하고 있는 제가 안쓰러웠습니다.
'왜 나는 나를 이렇게 미워할까?'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가 계속 자신을 때리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날 처음으로 거울을 보며 말했습니다.
"미안해. 그동안 너무 몰아붙여서."
어색했지만, 그 한마디가 무언가를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왜 완벽해야 한다고 믿을까요?
생각해 보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가끔 깜빡깜빡하고, 친구는 약속 시간에 늘 늦고, 부모님은 고집이 세십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완전함이 오히려 사랑스럽습니다. 인간적이고, 진실하고,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왜 나의 불완전함은 용납할 수 없을까요?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다른 사람들한테는 100점 만점에 70점만 받아도 괜찮다고 하면서, 왜 너한테는 99점도 부족하다고 해?"
그 말을 듣고 한참을 말없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랬거든요.
만약 가장 친한 친구가 제 옆에서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을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야, 왜 그렇게 너한테 못되게 굴어?"
"네가 남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화낼 거면서."
"좀 너그럽게 봐줘. 너도 인간이잖아."
맞습니다. 우리는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작년부터 시작한 작은 실천이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겁니다.
"훈아, 오늘 수고했어."
"괜찮아, 내일 다시 하면 돼."
"너도 처음 해보는 거잖아. 실수할 수 있지."
처음엔 이상하고 쑥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렇게 3인칭으로 말하니 정말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하지 않습니다.
자기 대화가 조금씩 바뀌면서, 일상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실수를 해도 덜 괴로워졌습니다. '실수도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도가 덜 두려워졌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니, 도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타인에게도 더 너그러워졌습니다. 나를 용서하니, 남도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즘 하루를 마무리하며 하는 일이 있습니다. 짧게라도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내느라 수고했어. 완벽하지 않았지만, 충분했어. 내일은 새로운 날이야. 잘 자. 내일도 네 편이 되어줄게."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루를 견뎌낸 나를 토닥이는 것입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덜 어색하고 조금 더 생각하면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엄마가 "잘 자라, 우리 아들" 하며 이불을 덮어주던 것처럼, 스스로를 재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많은 관계를 맺고 삽니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하지만 가장 중요한 관계를 잊곤 합니다. 바로 나 자신과의 관계를.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할 유일한 존재. 모든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동반자.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보는 증인.
그 존재와 적이 되어 살 것인가, 친구가 되어 살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새벽에 깨어도 예전과 다른 목소리를 듣습니다.
"오늘 실수했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괜찮아,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
"내일은 더 나은 날이 될 거야."
여전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기 비난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그 목소리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오래된 상처의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제든 다른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더 따뜻하고, 더 너그럽고, 더 격려하는 목소리를.
오늘,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혹시 너무 가혹하지는 않나요?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말해보세요.
"수고했어. 충분해. 괜찮아."
그 작은 위로가 당신의 하루를, 그리고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