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Oprah Winfrey
feat. 오프라 윈프리)
이젠 너무나도 유명해진 오프라 윈프리의 성장기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가 여섯 살 때 엄마에게 간다. 너무나도 가난했고, 그래서 엄마가 일하느라 집을 비운 사이 친척 남자들과 엄마의 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다. 그로 인해 오프라 윈프리는 심각한 방황의 길로 들어선다. 그 뒤로 엄마는 방황하는 딸을 감당하지 못해서 14살 때 아버지에게 보내버린다. 한마디로 버린 셈이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임신까지 한 오프라 윈프리는 말 그대로 최악의 성장과정을 겪는다.
이렇게 간단하고 짧게 서술했어도 정말 막막한 인생 아닌가? 버려진 존재였고, 설령 나와 관련이 있다면 나도 버렸을 법한 삶을 겪어냈던 그런 여자 아이다.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지워버리기도 한다.
기억조차 없었던 갓난아기였을 때, 난 유기될 뻔했다. 폭력과 외도를 일삼던 남편에게 지쳐서 엄마는 그 결혼을 끝내려 했지만 배 속에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다가 엄마는 결국 집을 나가버렸다. 내가 8살 때였다.
새엄마가 왔다. 이름도 모르는 어떤 여자였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졌다. 그렇게 다녀간 새엄마는 10명. 난 내 친엄마를 포함해서 11명의 엄마가 있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난 11번이나 버려진 셈이다. 아버지는 아무런 책임감 없이 자신의 욕심과 만족을 위해서든, 실수였든, 아니면 또 다른 이용과 목적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여자들을 데려왔다. 멋진 남자라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내어 던졌던 여자들은 그 모든 것이 껍데기임을 알고 나서 미련 없이 떠나버렸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고 다쳐도 전혀 관심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엔 버려진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변에 가까운 보육원에만 가 봐도 그런 아이들 투성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보육원에는 말 그대로 고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부터 고아인 아이들보다 이혼으로 인해 버려진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알고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교도소나 군대에서나 쓰일 법한 "면회"라는 단어가 보육원에도 존재한다. 엄마 아빠가 정기적으로 면회를 온다는 내용을 접할 때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물론 그 면회조차도 오지 않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모두 다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사랑을 양껏 해줘도 모자랄 부모에게 '버려졌다'라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의 삶도 각양각색이다. 자신이 버려졌다는 차원으로 이해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버려졌다는 것 때문에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서 몸과 마음이 다 꺼져가는 아이들도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땠을까? 그렇게 버려진 삶이었지만 일단 아버지는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주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기엔 이미 받은 상처가 너무나도 많고 컸다. 그러던 와중에 접하게 된 책을 통해서 세상과 자신을 다시 보게 되고 삶의 전환을 위해 몸부림치며 노력했다. 그 결과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 너무나도 멋지고 위대한 인물 오프라 윈프리다.
나중에 상황을 역전했다고 해서 버려졌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지금 현재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과거의 상처가 없어지고 잊히지 않는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대로 그렇게 버려진 인생을 살았다고 - 말 그대로 인생의 반전이나 역전도 없이 그냥 그저 그런 인생을 산다고 해도 버려졌다는 사실이 더 처참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버려진 것은 그저 버려졌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버려짐에 대한 것은 버린 쪽이 잘못이지 버려진 쪽이 잘못한 건 아니다.
그냥 오프라 윈프리 정도 되니깐 몸부림치고 노력해서 반전을 잘 이룬 것일까?
아니다. 분명 엄청나게 힘들고 지루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몸과 마음이 유린되었다고 지금 현재와 미래의 자신의 삶을 버리거나 스스로 망가뜨릴만한 이유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다. 정말 실제로 그렇다. 그 누군가 날 버렸다고 나도 날 버릴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나도 버려졌다는 속상함에 파묻혀서 살았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최선으로 일탈했다. 망가뜨리고 내 맘대로 살았다. 난 그럴 자격이 충분하게 있었다. 왜냐하면 난 버려졌으니깐. 반복해서 11번을 계속 버려졌으니깐.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망가뜨리고 살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과연 누가 손해인가?'
내 인생은 날 낳은 부모의 것도 아니고, 날 방치해 버린 그 누군가의 것도 아니다. 그건 소유도 권한도 모두 포함된다. 내 인생은 오롯이 100% 나의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사는 대로 내 삶의 결과를 얻게 된다. 좀 불쌍하게 살아왔다고 세상이 날 좀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다. 반대로 어려운 환경에서 씩씩함을 보여준다고 세상이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내가 나 자신에게 애쓰는 만큼, 딱 그만큼 삶은 달라진다. 그러니 버려졌다고 스스로 망가뜨리고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인 시선으로 살면 손해 보는 것은 그저 '나 자신'뿐이다. 부모도 아니고 내 자녀도 아니고 나와 관련된 어느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다. 그냥 내가 100% 손해 당사자다.
'그들이 날 버렸다고, 나도 날 버리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어온 이후로 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배우기 시작했다. 관련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더 집요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쓰는 것 자체가 이미 반전이자 역전이 아닌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 그건 내 삶이 그렇고, 니 삶도 그렇다. 어떤 특별하고 큰 역경을 겪은 사람의 전유물도 아니다.
부모에게 버려지지 않았음에도 자기 삶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도 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자기 삶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건 부모에게 버려졌다의 여부보다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낮게 봐서 그런 거다. 버려도 되는 그 정도의 가치로 말이다.
당신은 어떤가? 어떤 조건을 핑계로 자신의 삶을 버리거나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