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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Oct 21. 2022

끝내 산타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진짜 산타는 내 옆에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어쩌면 진짜 산타는 내 옆에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을 받는다는 친구 진석이가 비결을 알려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이제 딱 일주일 남았다. 그 때문인지 진석이의 말이 더 크게 들리는 듯했고,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 데."


 캐럴의 가사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섭다. 그래서 난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꾹꾹 참아내고 싶었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 기준이라면 올해에는 선물 받는 건 이미 물 건너갔다. 초등학교 입학식이 끝나자마자 엄마가 집을 나갔고, 난 하루가 멀다 하고 펑펑 울어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울음을 참는 게 아니었다. 난 그 캐럴을 만든 사람에게 배신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매년 선물을 받는 진석이라면 분명히 정확한 비결을 알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게 뭔데?"

 "양말을 엄청 큰 걸 걸어놔야 해."

 놀라운 말이었다. 


 "그렇구나. 양말..."

 "아니, 그냥 양말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 양말을 걸어놔야 해."


 8살 꼬마가 듣기에는 정말 설득력이 있었다. 더구나 진석이의 눈빛에는 진지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난 울음 참는 것에만 집중했지 양말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엄청 큰 양말이라니. 


 "근데 왜 엄청 커야 해?"

 "야, 너 바보냐? 양말이 커야 선물이 들어가지."


 정말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난 큰 양말이 없다. 선물이 들어갈 정도의 큰 양말은 더더욱 없다.


 "난 큰 양말이 없는데?"

 "응? 그거 엄마한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난 엄마 없어."

 "응? 엄마가 왜 없어? 그럼 넌 누가 낳았어?"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어려웠다. 분명 엄마가 날 낳았지만 지금 엄마가 없다는 걸 설명하는 건 나에게도 어려웠고, 진석이에게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몰라, 할머니한테 양말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다."

 "그래? 아니면 내 거 하나 줄까? 나 집에 큰 양말 엄청 많아."


 정말 대단했다. 큰 양말이 심지어 많다니. 진석이 엄마는 매년 그렇게 양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걸어놓은 양말 개수만큼 선물도 더 많이 생겼다. 8살이니 양말 개수가 거의 8개 정도 될 것이 분명했다.


 "정말 큰 양말 나 하나 줄 수 있어?"


 그렇게 진석이는 나에게 양말 하나를 기증하기로 했다. 그래, 기증이라는 단어가 왠지 딱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좋은 친구다. 덕분에 내 생애 처음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 내가 울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들고 왔는데 큰 양말이 없어서 그런 거였구나.'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것도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 나 자신이 한심했다. 

 진석이는 바로 그다음 날 큰 양말을 가져왔다. 그냥 모양새가 양말 실루엣이지 거의 에코백 수준이었다.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도 될 만큼 큰 사이즈였다. 그렇게 커진 양말만큼 내 마음속의 기대감도 더 커졌다. 진석이가 물었다. 


 "알지? 자기 전에?"

 "응? 자기 전에 뭐?"

 "자기 전에 기도해야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기도해야 해. 매일매일."

 "갖고 싶은 걸 기도하면 그걸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거야?"

 "응, 난 12월 1일부터 기도했어."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다. 역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은 그냥 받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원하는 선물이 뭔지 생각해봤다.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지만 그건 하나님에게 이미 부탁한 상태다.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태권 V 변신로봇이 어떨까? 이 아이템은 8단으로 분리되고 합체가 된다. 이 로봇은 정말 남자아이라면 모두 탐낼만한 어마어마한 아이템이다. 아니면 색연필 세트도 좋다. 준비물이지만 아버지가 사주지 않는 색연필 세트도 정말 필요했다. 운동화는 어떨까? 그래 진짜 운동화는 필요하다. 신고 있던 신발이 너무 작아서 발가락 10개가 죄다 아프다. 그 모든 선물을 다 받으면 좋겠지만 뭐든 하나라도 받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일단 그 3개로 정하고 기도하기로 했다. 3개를 말하고 그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를 선물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시간이 정말 더디 갔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고, 정해진 디데이가 있다면 시간은 훨씬 더 느리게 간다. 크리스마스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내 기도는 더 간절해졌다. 


 '분명히 산타할아버지가 내 기도를 들었겠지?'

 크리스마스이브 당일 낮에 진석이를 만났다. 진석이는 나에게 어떤 선물을 달라고 기도했는지 물었다. 난 그 3가지를 얘기해줬다. 진석이는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3가지를 이미 넘치게 가지고 있는 진석이에게는 내 선물 리스트가 우스웠는지도 모르겠다. 내 리스트에 별 리액션이 없는 진석이었지만 곧장 표정이 바뀌면서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난 이번엔 자전거 달라고 기도했어."

 "뭐라고? 자전거? 자전거를 어떻게 양말에 넣어?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들고 오신다고?"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진석이의 스케일도 이해가 안 되었고, 심지어 양말에 자전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진석이의 말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 금세 수긍할 수 있었다.


 "응 그래서 엄마가 집에 있는 양말을 다 붙여서 대왕 양말 만들어줬어."

 '아, 정말 저 녀석은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정말 부러웠다. 자전거도, 양말도 아닌 그런 엄마가 함께 있다는 것이 제일 부러웠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날이 밝았다. 뜬 눈으로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건 역시 내겐 무리였다. 일어나자마자 난 머리맡에 있는 양말부터 움켜줬다.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히 큰 양말도 준비했고 열심히 원하는 것을 기도도 했는데도 없었다.


 '12월 1일부터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뭐가 문제일까?'

 이런 고민을 하기엔 난 너무 어렸다. 난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말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다. 정말 내가 많이 울어서 그런 걸까? 올해는 엄마가 집을 나가서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울어서 그런 것인가? 그래서 양말도 기도도 통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럼 지금도 선물을 못 받아서 울고 있는데 내년까지도 이미 물 건너 간 건가? 


 사실 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함께 있을 때에도 그럴만한 가정 형편이 아니었고, 그나마 함께 있던 엄마도 이미 집을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신나게 바람을 피우고 도박에 빠져서 어차피 기능 상실이다. 크리스마스에 매 맞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무책임한 부모를 대신해서 나를 키워주던 할머니는 손주 남매에게 해 먹일 하루 세 끼 밥을 준비하는 것도 버거우시다.  


 나의 8번째 크리스마스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선물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 난 평생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산타가 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동심 깨진 어른이 되었지만 난 여전히 그 선물을 받고 싶다. 그렇게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난 이제 중년의 아저씨가 되고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큰 아이에겐 열세 번, 둘째 아이에겐 아홉 번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선물을 주는 기쁨이 이리도 크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을 매년 경험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못 받고 자라서 나도 못할 줄 알았는데,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기쁨을 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 옛날 산타에게 왕따 당했던 아픔이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말이다. 과연 정말 그럴까? 정말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객관적으로 더 큰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내가 그렇게 결정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뭔가를 누리지 못해서 내가 불쌍한 인생이고, 실패한 인생은 아닌 거다. 그렇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결정해서 그런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난 그런 인생이 아니다'라고 결정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첫째 아이는 산타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 아이는 열 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산타를 기다린다. 아니면 혹시 정말 산타를 믿는다는 연기를 펼치는 고도의 작전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작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아빠의 어린 시절 산타 이야기를 들은 두 딸은 아빠의 머리맡에 산타 대신 주는 선물을 놓아주었다. 산타는 루돌프 사슴을 타고 굴뚝으로 들어오는 그런 산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짜 산타는 내 옆에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그리고 나도 내 옆의 누군가에게 좋은 산타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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