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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Oct 07. 2022

그럼에도 나는 존재한다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존재의 가치는 어느 지점에서 빛날까?

 존재의 가치는 어떤 존재를 통해서 증명받게 될까?


 어떤 면에서는 모두 의미 없는 질문들이다. 매 순간 우리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 높이기 원한다. 하지만 존재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일까? 적당한 선에서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발버둥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가치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흔하게 관심을 갖는 것은 유명세와 경제적 능력이 아닐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는 것이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상위 1%의 최고 스타들을 보면서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는 스타들은 열등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갖는다. 그에 뒤질세라 일반인들은 그런 스타들과 인증샷이라도 성공한다면 자신의 SNS에 연일 자랑하기에 바쁘다. 유명한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가치가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셈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가치가 정말 높아질까? 그렇게 높아져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정도의 사람이 되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지고 윤택해질까? 물론 그런 활동 자체를 비난하거나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런 류의 열등감을 나름 해소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내 삶을 즐기고 누리는 차원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돈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물론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삶의 편의성과 윤택함은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자신의 존재 가치까지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100억을 투자해서 대학교를 세운 사람도 위대한 가치를 충분하게 보여주지만 김밥을 평생 말아서 1억 원을 기부한 어느 김밥 할머니의 존재 가치는 그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1억을 기부한 할머니가 다른 누군가의 100억 기부에 화를 낸다거나 100억을 기부할 때까지 절대 죽지 않겠다고 억지 부리지 않는다. 물론 어떤 기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길을 가다가 구걸하는 어떤 걸인에게 던진 100원짜리 동전 하나도 그에 못지않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위대한 100원이 될 수도 있다. 설령 단 한 푼도 기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 삶의 경제적 차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돈의 크기가 가치를 그대로 지켜주는 것은 분명하게 아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돈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존재 가치에 대해서 쫓는 것이 아니다. 존재 가치는 쫓는다고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쫓아간다고 해서 그 가치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존재라는 영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다.  


 폭력과 학대를 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남편이 죽기보다 싫어서 떠난 내 엄마. 

 난 그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냥 나라는 존재 하나만 놓고 보면 정말 괜찮지만 그렇게 부정적인 차원의 부모를 비추는 순간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만 같다. '나 역시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남자가 되겠지.' 아니면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들을 버려두고 떠나버리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린 어렵지 않게 접한다. 묻지 마 폭행의 누군가의 어린 시절이 어떻다는 이야기나, 어떤 살인자의 어린 시절이 열악했다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런 부정적인 환경 자체만으로 그 속에 있는 존재가 참으로 가치가 없고 희망도 없게 보이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에 서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이 알고 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 위대한 사람이 된 이야기도 수도 없이 많지만 그저 아무런 동요 없이 삶 속에서 세상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잘 살아내는 우리의 이웃들과 친구들이 수도 없이 많다. 


 진정 그 속에 진짜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훌륭한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가의 모델이 되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아침 해가 떠오르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위대하다면 더 좋지 않을까? 어떤 역경을 이겨내고 온 세상 사람들이 박수치며 환호해줄 만한 그런 사람이 되지 않고,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위대하게 되어서 존재가 빛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위대하게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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