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이기주의에 대하여

'나'를 잃어버린 사랑은 가능한가

by 강훈

기독교 윤리의 핵심인 '자기 부인'과 '희생'은 종종 오해받는다. 많은 신앙인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하며,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정작 성경의 계명은 중요한 전제를 달고 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문장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자는 타인 역시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화(Differentiation)'와 '경계선(Boundary)'의 개념은 이 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준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나와 타인 사이의 명확한 선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경계선이 무너진 상태에서의 희생은 숭고한 사랑이라기보다 '의존'이나 '강박'에 가까울 때가 많다. 내가 없으면 상대가 무너질 것 같다는 착각, 혹은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을 느낀다는 공포는 사랑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자신을 돌보는 행위는 이기심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예의'다. 스피노자(Spinoza)는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노력인 '코나투스(Conatus)'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 생동하는 에너지가 꺾인 상태에서 타인을 향해 내미는 손은 결국 상대에게 보상을 요구하게 되거나, 은밀한 우월감으로 변질되기 쉽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는 말은 대개 건강한 자기 돌봄이 결여된 사랑의 끝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이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착한 사람 증후군'이 유독 많이 발견되는 것은 비극이다. 거절은 불신앙으로 치부되고, 휴식은 태만으로 오해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중들의 끊임없는 요구 속에서도 홀로 한적한 곳을 찾아가 기도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했다. 그는 무한정 자신을 착취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구분했으며, 때로는 군중을 뒤로하고 떠날 줄 아는 '단호한 경계선'을 가진 삶과 사역의 모습이었다.


진정한 이웃 사랑은 '나'라는 샘에 물이 차오를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이다. 나를 방치한 채 타인에게 물을 길어주는 행위는 결국 샘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바닥을 드러낸 인간은 날카로워지며, 그 날카로움은 결국 사랑하려 했던 대상에게 상처를 입힌다. 따라서 자기를 돌보는 '건강한 이기주의'는 이웃 사랑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신앙적인 기초 공사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더 희생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지금 나 자신과 평화로운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인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이의 사랑은 타인에게 짐이 될 뿐이다.

신앙은 나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고 세워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거절하고, 때로는 숨어버리며, 때로는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가장 정직한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