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절망의 한복판에서 멈추지 않는 발걸음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긍정을 강요한다. "다 잘 될 거야", "포기하지 마" 같은 말들은 서점의 베스트셀러 칸을 차지하고 소셜 미디어를 떠다닌다. 하지만 정작 삶의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이런 식의 응원은 공허한 소음일 뿐이다. 근거 없는 낙관은 독이 된다. 현실의 비참함을 외면하게 만들고,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주저앉게 하기 때문이다. 진짜 소망은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폐허 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단호한 결기에서 태어난다.
낙관이라는 가짜 약을 버리기
우리는 흔히 소망과 낙관을 혼동한다. 낙관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계산적인 기대다. 반면 소망은 상황이 어떠하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정직한 선택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을 때만 소망을 품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의 유익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힘을 얻는 데 있다.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말할 때, 소망을 아는 자는 "아직 그 일을 대하는 내 마음의 태도는 남아있다"고 응수한다. 소망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몽상이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횃불을 들고 제자리를 지키는 용기다.
‘아직 아니’의 힘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인간을 ‘아직-아닌(Not-Yet)’ 존재로 정의했다. 우리는 현실에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않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에게 소망은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Learning Hope)’이다.
신앙은 우리에게 이 '소망을 배우는 법'을 가르친다. 지금 당장 눈앞에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사랑이 패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믿는 것이다. 블로흐가 강조했듯, 소망은 현실의 단단한 벽에 구멍을 내어 저 너머의 빛을 오늘로 끌어오는 행위다. 소망하는 사람은 현실에 순응하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진실을 믿기에, 오늘의 부조리에 맞서 기꺼이 불편한 길을 택한다.
무너진 자리에서 지키는 인간의 품격
소망의 유익은 우리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패배하지 않는 인간으로 남게 하는 데 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나보다 더 아픈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의 안락보다 공동체의 의를 먼저 생각하는 것. 그 비합리적인 고귀함이 바로 소망의 증거다.
빅터 프랭클이 나치수용소의 지옥 속에서도 빵 한 조각을 나누는 이들을 보며 발견했듯, 소망은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는 인간의 마지막 주권을 지켜낸다. 말로만 밝은 미래를 떠드는 비겁함을 버리고,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선의를 실천하는 것. 그 투박한 성실함이 쌓여 비로소 절망이라는 거대한 성벽에 균열을 낸다.
당신의 오늘은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결국 소망은 매일 아침 우리가 신발 끈을 묶으며 내리는 단단한 다짐이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비정하고 야만적이라 해도, 나는 그 야만에 물들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소망은 우리를 허무에서 건져내어 다시 역사 앞에 세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당신의 소망은 당신의 이익을 위한 기대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응답인가. 이제 "희망이 없다"는 냉소적인 한탄을 거두고, 당신의 진심이 머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시작해 보라.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끝내 타인을 연민하고 연대하는 것. 그 정직한 발걸음이야말로 당신의 신앙이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유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