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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Jul 27. 2022

죽겠다면서 진짜로 죽지는 않는다

일단 살아있으면 된 거다

 "죽겠다"는 소리를 정말 죽을 만큼 많이 뱉어낸다. 그만큼 힘들다는 말을 죽음이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죽겠다"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면 과연 정말 죽을만한 상황일까? 그렇지는 않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이면 "죽겠다"라는 말을 내뱉기 조차 쉽지 않다. 아니 그런 말을 내뱉는 것조차 사치다.

 어떤 상태일 때 그럴까? 환경도 내 맘대로 안되고, 일이 제대로 잘 풀리지 않는 그런 상태다. 물론 정도의 깊고 가벼움이 분명하게 있겠지만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바로 내가 처한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걸린 감기는 죽도록 아파도 네가 걸린 암은 하나도 안 아픈 셈이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것이, 삶이란 것이, 정말 죽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것일까? 원래 삶이란 게 그런 걸까? 때로는 어떤 기분이 좋고 잘 풀리는 그런 날도 있었을 거다. 그럴 땐 이렇게들 말한다.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거 같아." 아주아주 잘 풀렸을 때만 그렇게 말하는가? 그저 그럭저럭 괜찮을 때에도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어." 주관적인 차원에서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그냥 어떨 때에는 괜찮을 때도 있다. 

 이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상황들을 쭉 펼쳐 놓는다면 어떨까? 삶을 객관적으로 펼치는 것이 어렵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은 무엇일까? '그래도 저 사람은 나보다 낫네.' '뭐 저런 걸로 힘들다고 난리인 거야?' '우와,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 진짜 부럽다.' '정말 힘들겠다. 나라도 도와줘야겠다.'

 그렇다. 삶을 펼쳐보면, 인생을 펼쳐보면 다 나름 그런대로 괜찮고, 나름대로 잘 산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다. 짚신 장사 아들과 우산 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말이다. 햇빛이 쨍쨍한 좋은 날씨에는 우산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면서 비가 오기를 바라고,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짚신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면서 날씨가 좋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자녀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았을 때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가? 그저 반대로 살짝만 뒤집어도 상황은 행복해진다. 좋은 날씨에는 짚신이 잘 팔려서 좋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잘 팔려서 좋은 거 아니겠나?

 힘들다는 표현, 죽겠다는 표현 모두 자신의 삶이 엉망이라고 아예 프레임을 짜서 가두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환경이 바뀌지는 않는다. 환경이란 녀석이 신세 한탄하는 어떤 인간이 너무 불쌍하고 보기 안타까워서 뭔가 모습을 바꿔서 다가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환경과 모든 우주가 내 편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버려라.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적이라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이 죽고 싶거나 힘든지, 그래도 살만한 건지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별로인 상황도 빛나는 상황도 이 세상 모든 인생에는 다 존재하는 법이니깐.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살아있으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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