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이 듦이 왜 좋은가 - 마지막

by 강훈

오십의 입구에 서니, 삶의 끝자락이 남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은 내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퇴장하게 될지 조용히 그려본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맞이하는 '아름다운 죽음'을 소망하지만, 사실 삶은 그토록 친절한 작가가 아니다. 때로는 예고 없는 사고로, 때로는 허무할 만큼 비좁은 이유로 마침표가 찍힐 수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우리는 대개 죽음을 나쁜 손님으로 여기며 외면하며 산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소모하거나, 죽음을 정복해야 할 질병쯤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삶의 반대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긴 문장을 완성해 주는 마침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문장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으면 그것은 비문(非文)이 되거나 끝없는 소음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가슴 저린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유한함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삶에 대한 나의 애착은 여전히 뜨겁다. 매일 아침 눈을 떠 마주하는 공기, 가족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 내려가는 매 순간이 눈물겹게 감사하다. 하지만 이 뜨거운 애착과 별개로, 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끝’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두는 연습을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억지로 움켜쥐려는 집착스런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오십 대의 내가 도달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 중의 하나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진정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내 통제 아래 두겠다는 오만함이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허무한 종말이 닥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진다. 내일이 당연히 올 것이라는 착각을 걷어낸 자리에, 오늘이라는 시간이 선물하는 생생한 활력이 자리를 잡는다. 죽음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모든 순간을 가장 치열하고 최선으로 대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죽음을 생각하기 싫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이 저려온다. 내가 없는 그들의 시간을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아픈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결코 오지 않을 완벽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지금 여기에서 그들과 눈을 맞추고, 언제 마침표가 찍히더라도 후회 없을 만큼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다. 마침표의 위치는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마침표가 찍히기 전까지 어떤 단어들로 내 삶과 사랑의 문장을 채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잘 늙어간다는 것은, 내 삶이라는 문장의 길이에 집착하지 않고 그 문장의 가치에 집중하는 과정이다.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마침표를 바라보며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비겁한 변명이나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유한함을 긍정하는 사람의 눈빛은 맑고 단단하다. 그 사람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지금 실재하는 것들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자신의 남은 생을 기꺼이 바친다.


오늘 밤도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를 닫는다.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설령 오늘이 나의 마지막 문장이 된다 해도 그 끝에 마침표 하나를 찍을 준비가 되어 있다.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 통제 불가능한 운명조차 넉넉히 품어 안는 것. 그것이 나이 듦이 내게 준 가장 아프고도 찬란한 축복이다. 마침표 뒤에 남겨질 여운이 누군가의 가슴에 따뜻한 온기로 기억될 수 있다면, 나의 삶의 문장은 그것으로 충분히 완성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