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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pr 23. 2022

걱정도 땡겨 쓰니?

급전 땡겨쓰는건 언제나 탈이 난다. 하물며 걱정인들..

 

유행했던 사천만 땡겨주세요

 “4천만 땡겨  오래 전에 나오던 유행어다. 아마도 S방송국의 코미디 프로에서 나온 유행어로 기억된다. “난다김”이라는 패러디 캐릭터가 했던 말이다. 급하면 월급을   쓰기도 한다. 가불이라고 한다. 돈을 땡겨 쓰면 그걸 책임져야 한다. 대표적으로 땡겨 쓰는 것이 바로 신용카드다. 말이 신용카드지 쓰고 이자 얹어서 갚는거다. 땡겨 쓰고 방치하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가혹하다.

 철이 없던 20 초반에 카드를 처음 발급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그럼에도 신용카드를 만들어줬다.  당시에는 성인이면 누구나 카드 발급을 받을  있었다. 거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발급해 주는 그런 수준이었다. 아마 신용카드 발급 붐이었나보다. 심지어 사용 한도도 낮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용카드를 남발한 것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카드는 사용하기 좋다. 그냥 카드를 들이밀고 긁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있는 마법과 같다.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았던 신용카드였다.

 초반에는 카드로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  개월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알바로 벌어서 갚을  있다는 생각에 점점 부담없이 긁기 시작했다. 마치 든든한 빽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별로  빽도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다. 오래 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어떤 문제일까? 바로 빚의 누적이다. 정말 심각한건 갚아낼 능력을 벗어난 금액이 되어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지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인지를 한다. 거의 인지부조화 수준이다. , 벌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지금은 쓰고 보자.’ 대충 그런 생각인거다.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그나마 괜찮다. 철없는 20 초반의 나는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내가 갚을  없는 한계치가 가까워지자 다른 카드를 추가로 받아서 돌려막기를 한다.  깊은 늪으로 진입한 셈이다. 사실 돌려막는 것을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폭탄구간 진입인 셈이다. 당연하게  능력을 벗어난 빚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면 거기서 멈추고 수습을 해야 하지만, 나는  은 수렁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갚을거 시원하게 마저 써버리자.’ 도덕적인 이까지 추가된. 사용한도 가득 이것저것 구입한. 현금화   있는 것도 구매한다. 왜 그런 상황에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걸까?

 그렇게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20 초반의 나의 경제적 활동과 인생은 그렇게 처참하게 마무리된다. 나중에 30대가 되어서야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회복했다. 달콤했던 쓰기의 시간, 소비로 맛보는 만족의 크기보다 그걸 뒷처리하는 것이  쓰고 괴로웠다. 쓰는건 언제나  책임을 묻는다. 굳이 그렇게 땡겨서  이유가 없는 일에 땡겨서 써 버렸. 굳이  비싸고 좋은 음식점을  필요도 없었지만 간거다. 굳이  물건이 필요하지 않지만 구매하기 위해서 땡겨 쓴거다.

걱정의 96%는?

 땡겨서 쓰면  나는 것이  뭐가 있을까? 다름 아닌 ‘걱정이다. 걱정도 땡겨서 쓰는 사람이 있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이 걱정을 땡겨서 한다. 벌어지지 않은 일을 미리 땡겨서 걱정한다. 물론 어떤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 걱정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자주 들었던 말이지만, 걱정의 96%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고, 설령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어쩔  없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흔하게 땡겨서 하는 걱정은 뭐가 있을까? 자녀가 어떤 대학을 갈지를 유치원 들어갈 때부터 한다. 그럼  대학에 들어가나? 물론 그럴수도 있다.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깐. 다만 그냥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물어봐라. 어렸을 적에 계획했던 대학에  가게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더구나 대학에 가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이젠 말하기도 지겹다.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걱정하기도 한다. 반대로 합격을 해도 합격한 후에 어떻게 할지를  걱정한다. 지금 현재 상황에 대해서 집중해서 살아내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이다.  삶에 대해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우는  - 이것은 걱정이라기보다 고민에 가깝다 -  목적없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게 차이가 있다.

 걱정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   가지는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지금의 상태가 만족스러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이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이순간에 집중해야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이라는 것은 지나간 과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현재는 나를 불만족스러워하고 걱정하는 나만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집중해야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도 아니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도 아니다.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려면 앞서 이야기한대로  삶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존재해야 한다. 걱정해야  유일한 것이 있다면 아직  삶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걱정을 땡겨쓰지 말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 걱정하고 해결하자.  그것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하고 싶은게 많고 되고 싶은게 많아서다. 그런 군더더기들을 내려놓자. 그런 걱정들을 땡겨 오지 말자.

  걱정해야 행복이 오는게 아니라  걱정해야 행복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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