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일

by 김라희

6월 19일 일요일


아침 7시 반이 되자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일요일인데 왜 굳이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려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남편은 꽈악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이내 다시 잠든다. 지난 몇 주 소홀했던 아침 산책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대르릉 알람 소리에 맞춰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조용히 침대 밖으로 나와 간단하게 씻고 옷을 입는다. '얼마만이야? 몸이 게을러지려 하기 전에 어서어서 나가야지!' 운동복 차림에 질끈 머리를 묶고 한 시간 가량 아침을 걸었다. 반가웠다, 잊었던 선물, 부지런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밤 사이 내린 비에 풀잎은 더욱 싱그럽고, 깊은 흙내음은 마음껏 공기를 떠다닌다. 새들은 청량하게 시끄럽고, 거리를 걷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한가롭다. 주말 아침에 만날 수 있는 여유,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에 정성을 다한다. 어딘가로 바쁘게 향하다 보면 걷는 일은 그저 목적지를 향해 바삐 내딛는 행동일 뿐, 정성을 기울일 공간은 없다. 오늘 아침 발걸음은 참으로 찬찬하다. 발 뒤꿈치를 내딛고 무릎이 펴지며 한 발짝 내딛는 순간까지 몸의 울림에 온통 집중한다.


얼마 전 자연을 걷던 한가로운 기록이 가득한 인스타그램을 그만두었다. 그 공간을 닫으며, 이제 더 이상 자연에만 기대어 충만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말했다. 왜인지 아침을 걷던 그 많은 기록이 어느 순간 무용하다 느껴졌고, 조금 더 생산적인 곳에 시간을 쏟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 쓰며, 두어 달을 보냈을 무렵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뻐근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보낸 두어 달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만은 확실했다.


흐르는 바람을 만나면 귀 기울이고, 이쁜 꽃들이 핀 골목길을 지날 때면 가던 길 멈춰 서 향기라도 맡아보고, 구름이 몽글하면 고개가 빠지듯 올려다보는 내가 그 시간에는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시 걷는다. 그리고 나다운 일에 대해 떠올려 본다.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고, 외적으로 규정된 내가 아닌 내면의 참 나를 만나는 시간을 즐기며, 그 안에서 가득 찬 충만함을 느끼고 사는 일이 나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결정은 너무도 옳았다. 내면의 음성과 대화하고, 그 기록을 이렇게 남겨 둘 수 있고, 요즘처럼 그 어느 때보다 선택의 순간이 자주 나타날 때, 나답지 않은 일을 시작해 몇 년의 시간을 써버리는 그런 곳으로 다시 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운명은 바깥으로부터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식하게 될 것이라던 릴케의 문장을 속삭인다. 글 쓰는 일이 아니었다면, 다시 찾아 읽지도 않았을 문장을 증명해 보고도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겠지.


바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흐르는 구름을 바라다보면 내면의 음성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다시는 아침을 걷는 일을 접어두지 말자고 다짐한다. 서서히 인식하게 될 그러다 언젠가는 뚜렷하게 다가올 그 운명의 이야기를 꼭 듣자고 약속한다. 찬찬한 발걸음의 리듬에 맞춰 나다운 일을 찾으려 노래하는 깊은 내면의 소리를 만났던 오늘 아침은 그래서 더 선물 같다. 이렇게 걸으며, 흔들리지 않는 내부를 쌓아간다. 그렇게 시간을 축척하며,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날 운명의 이야기에 매일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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