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산이 되지는 말자
"어디서 이런 성격이 나왔을까?" 누구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하나씩은 품고 살게 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게 하나 있는데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 지시를 내리는 사람, 조직에서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나 그들이 정해 놓은 규칙에 무조건적으로는 따르지 않는 반항 기질이다. 지인 분과 저녁 식사를 하던 몇 년 전 여름, "반골 기질이 좀 보여. 그래서 호기심이 가."라는 말을 들었다. 생전 처음 들는 말이라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요? 그런 거 없는데..." 하며 반문하며 넘겼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하며 내가 모르던 숨은 반골 기질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노력 말이다. 생각을 되뇌어도 딱히 그럴만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짝꿍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인사 한 번 해 봐~"하며 장난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 인사해 보라는 뜬금없는 장난을 웃고 넘기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왜?" 하며 절대 그 장난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 후로 가끔 짝꿍은 비슷한 장난을 치곤 했는데 어느 날은 "왜 그렇게 인사하는 걸 싫어해? 이유가 있어?" 하며 묻기도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불현듯 "근데 자기 어렸을 때 뭐 크게 부당하다고 느낀 경험 같은 거 있었어? 인사 장난을 그렇게 안 받아주는 이유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몰라, 그런 거 없어. 그냥 인사하라고 강요하는 그 자체가 싫어! 그리고 이제 장난 좀 그만해!" 하고는 또다시 별일 아니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 전 넥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는데,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 김연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3학년 선생님들 중에 제일 무서운 사람으로 소문 나 있었고, 학생들 편애도 심했던 선생님이었다. 딱히 뛰어나지도 않지만 뒤처지지 않고 조용하게 학교 생활을 했던 난, 가끔 그 선생님 눈에 이쁜 옷이라도 입고 가야 아는 척을 받는 정도의 학생이었다.
여름 방학 직전, 하얀 반팔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이 일제히 가방을 메고 서서 하교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내 짝꿍은 반장 김종호였다. 근데 걔가 그렇게 장난이 심했다. 평소에도 장난을 자주 걸어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유독 더 심하게 종일 내 팔을 툭툭 치고, 놀리고, 머리를 잡아 댕기며 괴롭혀 짜증이 가득 오른 상태였다. 결국 가방을 뒤로 잡아당겨 옴팡지게 넘어졌다. 그렇게 화가 난 건 열 살 인생 처음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난 그 아이의 팔을 있는 힘껏 세게 꼬집었다, 피가 날 정도로...
김연산 선생님은 종호의 울음과 팔에 남은 손톱자국을 보고는 날 교탁 앞으로 불러냈다. "종호한테 왜 그런 거야?"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처음이라 무섭고 놀라 대답할 수 없었다. 한참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기만 하자 선생님은 세게 내 뺨을 내려쳤다. "너도 이렇게 맞아서 아파 봐야 종호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겠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 장면, 그 말. 어른한테 맞아본 건 처음이었다. "종호한테 미안하다고 어서 말해!" 멍멍한 귀를 따라 울리던 그 선생님의 앙칼진 목소리에 억울함과 부당한 마음이 가슴 밑바닥까지 차올랐다. 끝까지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했고, 그렇게 하교 시간은 끝이 났다.
학교 계단을 내려오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믿을 수 없었다. 신체적으로 아픈 것보다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혼이 나고, 맞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슨 어른이 저렇냐며 난 그때부터 혼자 그 선생님을 떠올릴 땐 "구연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아직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나쁜 일이고, 엄마, 아빠가 아시면 속상하실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그때 어른에 대한 실망감과 선생님 대한 존경심이 꽤나 크게 무너졌던 것 같다.
그 후로도 선생님들과는 거리를 두었고, 중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의 폭력성에 학교라는 곳은 부당함이 가득한 곳이라 여겼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그리울 뿐이지 절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질은 타고나는 거라고 하지만, 내 경우에는 "구연산"이 뺨을 내려친 그 순간의 트라우마를 통해 규칙이나 권력에 무조건적으로 따르면 위험하다는 걸 배운 듯싶다. 우리는 크고 작은 때론 기억조차 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쌓아가며 살 수밖에 없다. 그 트라우마를 통해 삶의 기술을 배우고, 성장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패막을 만들 기회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구연산" 같은 사람이 절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유 없이 사람을 편애하고, 자신의 화를 누르지 못해 어떤 종류의 폭력으로라도 타인에게 아픔과 상처를 가하는 그런 사람은 절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연산"이 보인 부당한 선생님의 모습을 존경할만한 분을 만나 조금은 희석시킬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학창 시절 그런 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는 누군가에게 그날의 일을 전해 들으셨던 것 같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동생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학교에 한 번 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뒤 산수 수업이 끝나는 종과 함께 간식거리를 양손에 가득 든 엄마가 앞문으로 힘차게 들어오셨다. "구연산"에게 인사만 꾸벅하시고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 주시며, "너네는 그저 맛있게 먹고, 재밌게 학교 생활하면 되는 거야."라고 계속 같은 말로 친구들에게 당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