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왜 읽을까?
내가 초등학교 시절 좋아하던 일 중 하나는 서점에 가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를 종종 서점에 데려가서 책을 단 한 권만 고르게 하였는데, 그 때의 버릇이 하나의 책에 꽂히면 계속 같은 주제, 같은 사람에 대한 책을 고르는 것이었다. 내가 그때 푹 빠져 있던 책은 신사임당과 장영실이었다. 막연히 어린 나이에 신사임당은 멋진 여성이었고, 조선시대의 장영실은 나와 성이 같아서 무언가 끌렸던 것 같다. 같은 사람이지만 출판사마다 글이 다르기 때문에 읽을 때마다 느낌이 참 새로웠고 서점에 가는 날이 너무나 즐거운 일 중 하나로 아직도 그 서점 모습과 책의 표지가 생각난다.
스무 살 때 집 바로 앞에 책 대여점이 생겼다. 그때부터 난 거의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여료가 대학생인 나도 쉽게 가입할 만큼 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싼 가격으로 하루에 10권씩 빌릴 수 있었는데, 빌린 10권을 돌려줘야 새 책을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3권 정도를 빌렸었다. 거기서 처음엔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었다. 나도 꿈 많은 20대였고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으며 나도 꿈을 꾸었었다. 그러다 소설에 눈을 돌렸고, 그때가 아마 야한(?) 소설을 처음 접한 때였던 것 같다.
태어나서 그렇게 적나라하게 묘사된 책을 처음 읽었다. 글로 표현한 정사장면은 나 스스로가 상상하여야 했기에 난 온몸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벽지 색부터 침대 모양, 조명 색, 그 여자의 표정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느 순간은 배꼽이 움찔했으니 그 책의 작가는 독자를 어떻게 홀리는지 알았음에 틀림없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도 쿵쿵 거리는 심장을 누가 들을까 주위를 살피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을 잘할까? 그 작가들은 오로지 글로서만 내게 영화 한 편을 보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세상의 모든 글쟁이가 부러워졌던 시기. 방송작가, 칼럼니스트, 기자, 기고가, 등등 이 세상에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하지만 이런 일은 나와는 거리가 먼 그저 연예인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속으로만 간직한 동경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고, 다시 일터로 나갔다. 일터에선 전쟁을 한다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면서 책은 나와 멀어졌다. 어떤 사람은 힘들 때 위로가 된 게 책이었다고 하지만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된 건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거나 자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보는 핸드폰으로 풀었다. 그러다 마흔이 되었다.
전쟁은 끝이 났고, 전쟁통에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애쓰던 시간을 이제는 살아남음에 감사하여 미래를 위해 정리를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20년도 지난 열정이 이제야 나를 찾아왔다. 글 쓰는 즐거움, 책 읽는 행복.
처음 브런치를 접했을 때만 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서점도 자주 들르게 되었고, 미래에는 책이 없어질 거라는 주장에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 이렇게 더 커지고, 더 많아지고, 독립서점까지 즐비한데 사람들이 점점 책을 안 읽는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는데?'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내 주위엔 책을 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 어느 누구도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기도 하고, 서점에 간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책 사려 고요?"
아니 서점에 책 사러 가지 내 나이에 서점에서 파는 문구 사러 갈까. 그 뒤부터는 누구를 만나도 책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생긴 거와 다른 이미지를 주어 그들을 놀래키고 싶지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이제는 작가가 되는 길도 예전보다 쉬워진 것 같다. 아니 기회가 많아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브런치 작자님들 대부분이 본인의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한다. 물론 나도 그런 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많이 내려놓았다.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미친 듯이 읽고 책을 쓰고, 골방에 갇혀서 글 쓰는 글쟁이처럼 보인적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책을 읽는 사람보다는 안 읽는 사람이 많고, 관심도 없는 사람은 훨씬 많다는 걸 알았다.
가끔은 내가 사는 이 곳에 누군가가 책을 좋아하여 구하기 힘든 한국 책을 서로 돌려보며 딱 한 마디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 좋았어." 딱 이 한마디면 되는데.. 참 아쉽다. 오늘 몇 개 안되는 책을 이리저리 끄적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혹시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한 마디 한다.
"이 책 좋았어. 추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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