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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17. 2019

여행의 시작은 어디일까

설렘이 느껴지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인생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어머니 뱃속에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일까 아니면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순간부터일까? 생일이라는 개념이 후자를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 우리의 인생은 준비기간 10달을 거쳐 어머니 배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인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여행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비행기를 탄 순간?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생일과는 다르게 이쪽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렇다면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설렘이 찾아오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순간이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든. 여행은 즐겁고 신나야 하는데 괴롭고 힘들면 그건 고행이 될 것이요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평범한 일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여행에 정해진 단계 혹은 순서가 있다면 다음을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여행을 가야겠다 > 일정을 정해야지 > 숙소와 항공권과 교통편을 확보하자 > 여행 짐을 싸야겠네 > 공항에 가서 면세쇼핑도 하고 비행기도 타자 > 여행지에서 신나게 여행을 하자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시무룩 > 집에 와서 여독을 풀소 사진과 각종 여행 짐을 정리하자 > 여행 향수병에 빠지자 > 다시 여행을 가야겠다 (무한반복)'


처음 셋째 단계까지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회사원이 되어 여행을 어느 정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삼은 뒤로는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요 휴가 일정을 상사/동료/업무를 생각하며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숙소와 항공편과 교통편은 항시 이상(편리)과 현실(비용)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러다 보니 나는 넷째 단계인 짐을 싸는 순간부터 설렘을 느낀다. 앞선 단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넘어 '내가 여행을 가긴 가는구나'를 처음으로 느끼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나는 09년에 처음 해외여행을 가봤다. 20대 중반이라는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요즘은 좀 더 어린 나이에 갔었으면 하는 후회는 있다. 사실 그 전까진 해외여행에 대한 생각이 (의외로) 없었다. 하루하루 내 시선과 팔에 닿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미있었고 때문에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욕구나 바람은 없었다. '굳이?' 


그런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직장인이 되면 더욱 시간이 없어지니 그전에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오라는 아버님의 조언 덕분에 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큰 자산이자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평생 그러하지 않을까? 이후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해외여행은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가라고 얘기하고 다닌다. 이때의 경험 덕분에.


남들은 첫 해외여행이라면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정도를 가거나 유럽이라도 1~2주 정도 가볍게 다녀온다는데 나는 첫 해외여행을 유럽으로 그것도 6주가 넘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 머물렀다.


마치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자마자 연습게임 없이 바로 중간보스 판으로 넘어간 느낌. (끝판왕은 아니겠지 첫 여행에 수개월 넘게 체류한 분들도 계실 테니) 첫 해외여행에 장소도 멀고 체류기간도 긴 지라 걱정이 많이 앞서기도 했지만 첫 유럽(해외) 여행에서 오는 기대감으로 그 모든 걸 덮어버렸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여기저기 여행도 많이 다녔고 그에 따라 여행 짐도 수없이 쌌다가 풀었다를 반복하며 내공이 많이 쌓였다. 웬만한 여행지 가는 짐은 바로 전 날 잠들기 직전에도 뭘 챙겨야 할지 경험에서 오는 바이브가 있으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도 만약 지금 유럽에서 6주 넘게 머물 짐을 싸라고 하면 고민 좀 할 것 같긴 하다.


하물며, 10년 전 첫 해외여행을 유럽으로 가는데 짐을 준비하자니 정말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때 당시 유행했던 '유랑'이라는 카페도 들어가 보고 (지금도 있으려나..) 유럽여행 책도 구입해서 읽어보는 등 당시 나름의 최대한 노력을 다 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아버님의 조언이 역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10년 전 준비한 여행 짐이다. 지금 보면 뺄 것도 많고 안 챙긴 것도 많다. 더군다나 캐리어가 충분히 활용되었을 시기에도 아버님의 조언으로 정말 배낭을 메고 다녔다. 그야말로 배낭여행. 처음에는 나만 배낭을 지고 다니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정작 유럽에 가니 현지인들은 캐리어보단 배낭을 더 많이 지고 다녔다는 거. 편한 것은 캐리어겠지만 배낭여행은 한 번쯤 꿈꿔볼 로망 아닌가.


여행 짐을 준비하는 건 여행에 앞선 일종이 세리머니와 같다. 짐을 준비하는 건 귀찮을 수 있어도 짐을 다 챙기고 배낭에 넣는 순간부터는 무척 설레기 시작한다. '이제 정말 여행을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에. 그래서 나의 여행은 짐을 챙기는 순간 시작된다. 


당신의 여행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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