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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21. 2019

또 하나의 여행, 공항

공항엔 도대체 출발 몇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 걸까


출발 전 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이다. 공항엔 도대체 비행기 출발 몇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 걸까? 왠지 너무 늦게 도착하면 시간에 쫓길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일찍 도착하면 시간이 아깝다. 이 중간을 잘 지킬 수 있는 절대 시간이란 게 존재할까?


누군가는 말한다. 국제선 같은 경우 대략 출발 2시간 전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티켓팅과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쇼핑도 섭렵할 수 있다고. 국내선 같은 경우는 출국 수속이 따로 없으니 대략 출발 1시간 전이면 충분하다. 




예전에는 공항은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공항 놀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또 다른 여행이자 놀이가 시작되는 공간이 되고 있다. 면세구역 밖에도 각종 레스토랑과 쉼터, 쇼핑할 수 있는 곳이 많고 면세구역 안에도 역시 그렇다. 특히 최근 인천공항에는 가히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각종 시설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무래도 늘어난 국내 여행객을 위한 배려가(자 지갑을 털기 위한 수단이) 기도 하겠지만 외국 여행객에게는 그 나라의 첫 관문이기에 이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 요소로서 화려하고 편리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공항을 이용했을 땐 모든 게 신기했고 서툴렀다. 공항은 엄청나게 크고 출국 절차는 여행이 처음인 나에게 분히 복잡했다. 어디에서 무얼 해야 할지 인터넷과 여행책자로 예습하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머릿속이 멍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여기저기 물어본 덕분에 항공사 카운터에서 발권도 하고 보안검색대도 무사히(?!) 통과했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지금도 여전히 항공사 카운터에서 짐을 붙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수화물 무게가 초과하진 않을까? 뭔가 넣어선 안될 게 들어가 있진 않을까? 


보안검색대는 카운터 보단 한결 긴장이 덜 된다. 카운터에서 이미 보낼 짐들은 다 보낸 상태기 때문에 내 몸에는 보안검색대에 걸릴 물건이 거의 없다. 단지 어느 쪽으로 줄을 서야 조금이라도 빨리 이 지루한 검색대를 빠져나갈까 눈알과 머리를 굴리기에 바쁠 뿐이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고 그제야 면세구역에 진입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전 세계적으로 인천공항만큼 면세구역이 잘 되어 있는 공항은 본 적이 없다.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가는 순간까지 여행객들의 지갑을 열어젖히려는 면세점들의 눈물겨운 시도가 엿보인다. 


처음 몇 번은 면세구역이 너무나 신기해서 저쪽 복도 끝에서 이쪽 복도 끝까지 전부 매장을 훑고 다녔다. 딱히 살 물건은 없어도 뭔가 국내 매장보다 저렴하다는 표기에 언제든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은 정말 필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딱히 목적 없이 면세구역을 배회하진 않는다. 


흡사 사이렌의 노랫소리처럼 강력한 면세점의 유혹을 떨구고 나면 탑승 게이트가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에 그제야 '와.. 나 진짜 여행을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용한 항공사는 훗날 견과류로 유명해졌다. '프랑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야 해~'라며 나를 태울 비행기를 찍었고 이후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는 일종의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처럼 되풀이되었다.


탑승게이트는 전광판에 새겨진 시각인 1시에 열렸고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1등석/비즈니스석 승객용 출입구와 이코노미석 승객용 출입구가 따로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지불한 비용에 따라 편의가 달라지고 사람을 가른다니. 지금이야 여러 번 보다 보니 당연하듯 생각하지만 이후 나는 비슷한 메커니즘의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다. 그리고 몇 년 뒤 마이클 샌델 교수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서 정확히 이 장면을 언급한다.


비행기 출구 앞에서 승무원들은 자본주의 미소로 나를 맞이했고 나는 있어 보이려는 생각에 영자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신문은 파리로 가는 10시간 내내 단 한 번도 펴진 적이 없었다) 두툼한 비행기 문을 탕탕 두들기며 '잘 부탁한다' 말 한마디 건네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비행기 대기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5년 전 스위스로 가기 위해 핀에어를 타고 잠시 반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당시 당시 반타 공항에 눈에 많이 내려서 하얗게 쌓인 활주로가 인상적이었다. '눈이 이렇게 많이 와도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아찔했던 대기 기억은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데 출발 시각이 되었는데도 꼼짝도 안고 비행기가 가만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물탱크를 뒤에 실은 트럭이 와서 양 옆에 있는 날개에 무언가를 계속 살포? 하는데 승무원이 날개가 얼어서 녹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날개가 얼었는데 저렇게 뭔가를 뿌려서 녹일 수 있는 건가? 이대로 날아도 되는 거야?' 엄청 무서웠는데 막상 비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담인데 예전 회사(통신사)에서 일할 때 공항과 관련된 일을 잠깐 했었다. 통신사에서 공항과 관련된 일이란 무엇일까? 로밍이다. 지금이야 로밍이 CS의 일부로 인식되고 와이파이나 현지 유심 등 대체제도 많지만 내가 근무를 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 갈 때 로밍은 절대적이었다. 무선통신 매출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했다는 얘기다. 


로밍 부서에서 내가 맡은 일은 고객 접점 채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고객 접점은 콜센터(비대면)와 공항 로밍센터(대면)로 나뉜다. 새로운 상품 출시로 인한 교육/안내, 미스터리 쇼핑, 인력관리 등 갖은 이유로 센터를 방문하곤 했다. 


로밍 콜센터는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공항 로밍센터는 당연히 공항에 있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그리고 김해공항이다. 김해공항은 로밍센터 상면 입찰을 위해 한 번, 센터 직원들 격려를 위해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을 방문한 게 전부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쉽게 가기가 힘들다. 


그래도 김해'공항'을 방문하는지라 갈 때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다. 와우, 이 짠돌이 회사에서 출장 갈 때 비행기를 타는 부서는 여기뿐이었을 거다. 물론 비행기를 탄다고 해서 다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 상사와 함께 타는 비행기는 땅에 붙어 기어가는지 하늘 위를 날아가는지 알게 뭐람. 모두의 평화를 위해 좌석 예약할 땐 전부 따로 앉힌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은 가까워서 자주 갔다. 특히 인천공항의 경우 상징성도 있고 고객이든 비고객이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때문에 회사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곳이기도 했다. 


로밍 부서에 배치받고 처음 공항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공항열차를 타고 공항에 가는데 도대체 이게 업무차 가는 건지 놀러 가는 건지 분간이 잘 안되어 '뭐가 그리 신이 난 거야?'라는 선배의 말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분명 나는 업무차 공항에 방문했는데 공항 특유의 분위기에 휩쓸려 마치 여행을 온 것 마냥 들떠있었다. 


그런데 한참 여행이 아닌 업무로 공항을 방문하다 보니 역효과가 났다. 여행을 위해 공항을 방문했을 때도 이게 업무 때문에 온 건지 여행을 위해 온 건지 반대로 헷갈린 것이다. 예전엔 보이지도 않던 공항 로밍센터가 먼저 눈에 보이고, 공항 2층과 3층 사이에 있는 사무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로밍센터에 사람은 많이 서있나 서비스는 괜찮나 나도 모르게 자꾸 업무 생각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로밍센터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겠다. 여행 이야기 잔뜩 쓰다가 갑자기 옛 업무 생각이 나서 다른 길로 빠져버렸네.. 별책부록 '또 하나의 업무, 공항' 쯤으로 봐주셨으면.. 이제 비행기를 타러 가보자. 


words&photo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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