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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28. 2019

비행기는 타도 타도 무섭다

기억하시나요 당신의 첫 비행

2020년엔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위 캐릭터를 보고 반가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30대 혹은 40대일 확률이 높다.(시작부터 팩폭 해서 죄송합니다) 1980년대 후반 KBS를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인 "2020 우주의 원더 키디"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당시 프랑스에까지 수출되어 꽤나 인기를 끌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어린 나는 2020년이 되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맘껏 여행을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다. 우주여행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덕분에 어릴 때 내 꿈은 문학자 또는 우주비행사였다.


수 십 년이 지나 2020년이 다가왔지만 우리는 우주는커녕 아직 바다 깊은 곳 또는 지구 깊은 곳 조차 정복하지 못했다.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이 군비경쟁을 하며 또 하나의 상징적 경쟁으로 대우주 시대를 연다. 두 국가는 앞다투어 비행체를 그리고 사람을 우주 밖으로 보냈다. 얼마 안 있으면 우주의 원더 키디가 실현될 듯싶었지만 높이 솟구칠 줄 알았던 대 우주시대는 미처 그 꽃을 다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렸다.


어릴 땐 이게 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그렇게 순수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비용 대비 생산성 문제와 정치적 이슈 등 소위 '어른의 사정'으로 우주개발이 지연되고 중단되었단 사실을 '키드'였던 어린 내가 알았다면 적잖게 실망했을 테니.



우주비행은 차츰 현실에서 멀어졌지만 차선책으로 인류 최초 동력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를 즐겨 읽었다. 하늘을 날고 싶다던 인류의 꿈을 이뤄낸 사람들이자 나의 영웅이기도 했던 사람들. '언젠간 나도 비행기를 타보겠지' '비행기를 타면 어떤 기분일까' 설레었던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웬걸, 처음 타본 비행기는 너무나도 무서웠다. 


비행기 좌석은 생각보다 좁고 갑갑했다. 덩치가 큰 사람은 좌석을 2개라도 예약해야 할까. 활주로를 천천히 이동하던 비행기는 이내 살짝 정지했다. 그리고 내 온몸의 세포는 본능적으로 나에게 경고했다. "이제 올라갈 거야" 마치, 롤러코스터가 제일 높은 지점에서 떨어지기 직전 잠시 멈춘 그 순간처럼.


비행기는 이내 이륙을 위해 급가속을 시작했고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온몸이 뒤로 젖혀지는 체험을 했다. 더더더더덜덜덜덜 비행기는 온몸을 흔들어댔고 크아 아아 앙 괴성을 질러대며 어느 순간 붕~하고 가볍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비행기는 흔들림 없이 가만히 순항해도 무섭고 (이거 잘 가고 있는 거 맞아? 아무 움직임이 없는 거 같은데?!) 터뷸런스를 만나 미친 듯이 흔들리면 더 무섭다. 평소 안 찾던 하느님을 찾게 되고 인생을 되돌아보며 살아서 착륙하면 착하게 살겠다는 다짐을 수십 번 한다.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고 하늘 위를 나는 것이 신기해서 찍은 사진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높은 하늘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속절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무서웠다. 유럽으로 가는 10시간 내내 잠 한숨 못 자고 비행기와 싸웠다. 여행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을 다 빼버린 느낌.


몇 번의 순항과 난기류를 반복해서 겪는 동안 조금씩 비행에 그리고 비행기에 익숙해졌고 곧 실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적기여서 그런지 대부분이 한국사람이었지만 드문드문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10시간 뒤에는 내가 외국인이 되겠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앞 좌석에 앉은 독일에서 온 꼬꼬마들이 불현듯 뒤돌아보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왜 이래 나도 너네가 신기해' 확실히 서양 아이들은 동양 아이들에 비해 뭔가 타고난 체력이 남다르다. 비슷한 좌석에 탄 한국 아이는 한 시간 정도 울다 지쳐 잠들었는데 서양 아이는 무려 세 시간을 계속 울어댔다.


비행공포증은 비행기를 타도 타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평생소원 중 하나는 이륙하기 직전에 잠들어서 착륙하기 직전에 눈을 뜨는 것인데 비행시간이 1시간이든 10시간이든 상관없이 첫 비행 이후 10년이 지나 수많은 비행기를 타봤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비행기 좌석에 앉는 순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눈을 감고 온 힘을 다해 잠을 자려 애써서 몇 번이나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이상하게도 전 날 밤을 새든 피곤하든 상관없이 비행기가 활주로에 진입하려는 순간 기가 막히게 잠이 확 깨고 이륙을 위해 미친 듯이 달리는 순간 내 잠도 같이 달아나버린다. 참 알 수가 없다.


비행 공포증만 없다면 길고 긴 비행시간도 여행의 일종이요,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못다 한 여행 준비를 한다든가, 기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나 개인 휴대기기를 통해 최신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비행기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온 몸의 세포가 전부 체내 비상 감지 시스템에 집중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나도 '비행 참 재밌네'라고 느낀 경험이 한 번 있었는데 그건 바로 하와이 여행 때. 마우이 섬에서 오하우 섬으로 가는 1시간 남짓의 짧은 비행이었는데 이륙부터 착륙까지 무섭다기보다는 너무나도 재미있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이륙할 때 활주로에서부터 보이던 무지개가 두려움을 풀어주었고, 창 밖으로 보이던 아름다운 하와이 제도의 바다와 여러 섬은 비행 공포증을 싹 없애줄 정도로 아름답고 멋졌다. 처음으로 하늘을 난다는 게 이렇게나 재밌구나를 깨닫게 해 준 비행.


이 이후로도 간혹 비행이 무섭기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역시 모든지 생각과 관점을 바꿀만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은 순간이랄까



여담이지만, 이륙부터 착륙까지 내내 무서워하는 비행에도 단 한순간 두려움이 사라지는 때가 있다. 바로 기내식님이 등장하실 때. 항공사마다, 같은 항공사여도 노선마다 기내식이 다르게 나온다. 이번에는 어떤 기내식이 나올까 어떤 구성으로 나올까 어떤 음식을 먹게 될까 기대하느라 비행의 무서움 따위는 사라진다.


막상 기내식만 뚝 떼어서 지상에서 준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지만, 만 미터 상공에서 별다른 선택권이 없어질 때는 그야말로 꿀맛인 신비로움.


혹시 아는가 나의 자녀세대는 우주선은 타도 타도 무섭다 라는 글을 쓸 수 있을지. 2020의 원더 어른이 어느 원더 키디에게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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