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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Sep 30. 2019

유쾌한 에너지가 터지는 곳

사람 사는 곳, 시장

누구든 자기만의 여행 루틴(routine)이 있다


어느 정도 삶을 살다 보면 자기만의 인생철학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착하게 살자. 돈을 벌자. 열심히 살자. 대충 살자. 수많은 자기 다짐들이 있을 것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자꾸 가다 보면 자기만의 여행 철학이 생긴다. 맛있는 건 꼭 먹어야 한다. 볼거리는 꼭 챙겨야 한다. 숙소는 꼭 교통 요충지에 잡아야 한다 등.


나 같은 경우 딱 두 가지 루틴? 혹은 규칙을 갖고 있다. 한 가지는 "그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갈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도시의 시장을 갈 것"이다. 첫 번째 루틴의 경우 언젠가 다른 글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 같아서 여기선 잠시 넘어가 본다. 


'시장'이라는 곳은 참 재미있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곳이랄까. 먹고 삶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히며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한다. 돈이라는 차가운 물체가 거래 속에 오가면서도 그 돈을 건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손길을 타고 따스한 정이 오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 동네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용현시장'이었을 거다. 내가 살았던 동네가 크지도 않았거니와 때문에 시장 역시 작은 십자형 골목 서너 블록 안에 들어올 정도로 크지 않았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따라가서 주로 분식집 떡꼬치를 사 먹은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반찬을 다 고를 때까지 옆에 있다가 봉투를 들어드린 수고비로 바삭하게 잘 튀겨진 떡꼬치를 이내 손에 쥔다. 어찌나 맛있던지. 


아버지와 시장을 갈 때는 반찬 가게 등은 그대로 지나쳐 깊숙한 곳에 있는 닭강정 집으로 곧장 향했다. 그 날은 밥 대신 집에서 치킨을 먹는 행복한 날인 것이다. 


하지만 유년시절 추억은 이제 정말로 빛바랜 흑백사진 속 기억이 되어버렸다. 요즘 아이들의 추억은 재래시장이 아니라 이마트 홈플러스 코스트코.. 를 넘어서 슥배송, 마켓 컬리, 쿠팡 이츠가 되어 있으려나


시대는 점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점을 없애고 있다. 재래시장은 (예를 드면) 상품 품목 하나하나마다 상인들이 있어서 상품을 고를 때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마트는 정육점 등 특수 품목을 제외하면 캐셔 정도에게나 말을 걸 수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오가는 대화란 '얼마예요' '할부는요?' 등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말 뿐이다. 


더 나아가 슥, 마켓 컬리, 쿠팡 이츠로 가면 사람 간의 접점이 아예 사라진다. 나와 판매자 사이는 무수히 많은 클릭과 코딩 언어 그리고 모니터가 가득 채울 뿐이다. 그래서 사람 간의 정이 그리울 땐 더욱 재래시장을 찾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여행 갈 때도 그 나라 특유의 사람 냄새가 궁금해서 마트가 아닌 재래시장은 꼭 방문하려 한다. 세계 어딜 가나 보편적인 요소와 독특한 요소가 공존한다. 시장도 그러하다. 어딜 가든 시장 풍경은 다 비슷비슷하면서도 또 그 나라 특유의 독특함이 배어있다. 



방콕에 여행 갔을 때 나는 필히 짜뚜짝  시장을 들르리라 맘을 굳게 먹었다. 이 시장은 방콕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총 5천 여개의 점포가 있으며 하루 방문자 수만 20만에서 30만에 이른다고 추정되고 있다. 얼마나 크면 구글 지도에도 설명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거대한 시장'이라고 되어 있을까


짜뚜짝 시장은 들어가는 입구만 수 십 개에 달하며 섹션별로 분류해버리면 옷, 액세서리, 골동품, 식물, 레스토랑, 인테리어, 공예품 등 20여 개가 넘어가 버리는 거대한 시장이다. 지도를 보고 원하는 곳을 바로 갈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지도가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크기다. 


게다가 정말 별의별 제품을 판매하며 상기했듯 엄청난 인파가 붐비는 곳이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 모든 먹거리와 상품, 방콕의 모든 시민들이 한데 모인 듯한 느낌이다. 



시장에 가면 상품도 상품이지만 사람을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주로 하루 종일 상품을 판매하느라 손님을 상대하느라 지친 상인들의 표정을 보거나 물건을 살까 말까 고민이 서려있는 손님들 표정을 보곤 한다. 상반된 입장의 두 사람 얼굴에 스치는 대조된 표정과 물건을 파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 사이의 심리전이란.



지친 상인들의 표정을 보면 금세 정신 차리게 된다. 정신을 차리게 된다는 것은.. 나는 분명 여기 여행을 온 여행객이고 여행하느라 피곤한 것은 굉장히 즐거운 쪽에 가까운 피곤이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을 보노라면 문득 이곳을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현지인의 시선으로 보게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을 여행자가 아닌 이 곳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란 가정을 통해 다시 바라보는 계기도 된다. 


상인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멍하게 있는 분, 지친 표정으로 있는 분, 그래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분 등 다양하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표정은 짜뚜짝 시장의 명물 빠에야 아저씨였다. 



짜뚜짝 시장의 먹거리 골목을 지나 계속 길을 따라 걷는데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리는 게 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짜뚜짝 시장의 명물 빠에야 아저씨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생김새부터 범상치 않았던 이 아저씨는 이곳에서만 계속 빠에야를 만들었다고 한다. 



먹음직스럽게 잘 요리된 음식. 실제로 보면 향까지 더해져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양념 따윈 아끼지 않겠다는 기세로 탈탈 쏟아붓고 있는 상남자 아저씨는 그 유명한 소금 세프나 최현석 세프의 원조격은 되는 것 같다. 


방콕 시내에 빠에야를 만드는 가게가 수천수만 개 있을지라도 이 아저씨 하나를 당해내지 못할 것 같다. 이 정도면 뭔가 캐릭터로 만들어도 잘 팔릴 듯. 하지만 이 아저씨의 진정한 매력은 그 누구와도 금방 친구가 되는 미친 친화력이다. 



앞 뒤에 오간 대화야 잘 모르겠지만 빠에야를 보다가 잠시 다시 아저씨를 보았는데 앞에 있던 어느 손님과 흥겹게 반갑게 즐겁게 인사를 하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이 친화력 무엇?! 한 번 격하게 부딪히고 맥주병을 든 손님 역시 쿨하게 제 갈길을 간다. 오랜만에 다시 사진을 보니 둘이 뭔가 묘하게 닮은 것도 같다. 부자지간일까..



아저씨는 쇼맨 쉽도 굉장히 강하다. 지나가는 사람들 와 일일이 사진도 찍어주고 때로는 코에 맥주를 부어 입으로 마시는 묘기도 부려주신다. 사진의 압권은 뒤에 있는 여성분의 표정..


이렇게 해서 만들어준 빠에야, 사실 맛은 그냥 평범했다. 맛에서는 이 집만의 독특한 매력을 찾기 힘들다. 근데 매력은 저 아저씨가 다 갖고 있는 듯했다. 장사야 결과적으로 사람들만 많이 모이게 하면 그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나 이런 관광지는 대부분 한 번 오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음식 맛이 기가 막혀서 다시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라리 이런 식의 쇼맨십으로 인생 딱 한 번 방문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식탁 앞에 앉히는 게 훨씬 더 영리한 방법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아저씨는 계속 그 친화력을 발산하고 계셨다. 시장은 이렇게 의외의 만남과 즐거움을 선사해 언제나 방문하게 된다.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곳. 때로는 유쾌한 에너지가 터지는 곳. 그곳이 바로 시장이다.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시장을 빠져나온다. 짜뚜짝은 유쾌한 빠에야 아저씨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words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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