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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Oct 12. 2019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 극장과 할머니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광고 카피를 좋아한다.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를 소비자의 가슴 깊숙한 곳에 빠지지 않도록 단박에 찔러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날카롭고 예리하다. 그리고 강력하게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덕분에 잘 뽑은 광고 카피는 시대를 초월해 후대에 전해지고 기억된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카피 역시 그렇다.


사실 이 카피에는 놀라운 비밀 하나가 숨어있다. 이 카피의 원문이 "Let's make things better"라는 것. 도저히 '작은 차이'와 '명품'을 유추해낼 수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직역해서 '좀 더 낫게 만들자'로 번역했거나 여기서 조금만 더 은유적인 수준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똑같은 원문을 보고 '작은 차이'와 '명품'을 떠올리고 이런 카피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작은 차이로 명품(카피)을 만든 것. (초월 번역의 좋은 예)



10년 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방문한 적이 있다. 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화의 도시로, 자연사 박물관, 슈페판 성당 빈 대학, 국립 오페라 극장, 벨베데레 궁전과 쇤부른 궁전 등 도시 전체에 문화유산이 넘쳐난다. 오죽하면 구시가지가 전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을까.


만약 유네스코에 오스트리아 담당자가 있다면 일일이 지정하다가 짜증이나서 구시가지 전체를 지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파파문 (파도파도 문화유산)


이런 느낌을 받은 도시가 몇 군데 더 있는다. 파리와 로마. 이들 도시에 머무는 내내 눈에 치이고 발에 밟히는 것이 전부 문화유산(유적)이었다. 처음 파리 혹은 로마에 도착해서 책에서나 보았던 각종 건축물들에 눈이 휘둥그레져, 연신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다. 숨쉴때 마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해야 해서.


이들 두 도시와는 달리 빈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치안도 좋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오후에 슈테판 성당과 케른트너 거리에서 시간을 보낸 뒤, '문화 수도 빈에 왔는데 오페라 정도는 봐주고 가야지'라는 허세 섞인 가벼운 생각에 국립 오페라 극장을 향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뮤지컬이나 오페라 공연을 가본 적이 없다.


별 취미도 없거니와 '오페라' 하면 막연히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거나 향유하기 어려운 고급진 취미라 생각했다. 공연 하나 당 수 십만 원 하는 비싼 티켓 때문이다. 그래서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그냥 국립 오페라 극장을 구경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둘 생각이었다.


빈이 문화 수도라면 국립 오페라 극장은 수도국 정도 될 것이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다. 공연은 대부분 오후 6시 이후 시작되는데  가격이 공연에 따라 그리고 좌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때마침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지 오페라 극장 주변에는 많은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장의 규모와 고풍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진중한 옷차림의 사람들만 입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오페라 극장이면 좀 차려입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에 잔뜩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며 티켓 창구를 찾아본다.


때 마침 내가 방문했을 때 오페라 Don Giovanni가 밤 7시 공연을 앞두고 있었고 '옳거니!'라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좌석표 가격을 보았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내면) 한국 돈으로 거의 십 수 만 원에서 수십 만 원 가까이했다. 가난한 대학생 여행자였던 내겐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기대는 안했지만 막상 극장에 도착하여 세계적인 문화수도 빈에 와서 오페라 하나 보고 가지도 못할 것을 생각하니 무척 아쉬워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티켓 창구의 직원이 입석표도 있으니 생각해보라고 한다.


오페라를 서서 볼 수도 있는 거였어?


오페라 문외한이어서 입석 문화조차 모르고 있었다. 뭘 어떻게 보는 건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가격을 보니 고작? 4유로, 한국돈으로 대략 5천 원 정도 하는 가격에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을 볼 수 있다니! 나는 망설임 없이 덥석 입석표를 구입했다.



드디어 나도 (팔자에 없는)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을 거란 설렘에 티켓 창구 직원이 알려준 Standing Area 쪽으로 향한다. 으리으리한 정문 출입구와는 달리 평범한 문을 통해 들어간 통로에는 이미 10명 정도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까지 시간이 넉넉히 남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어색하고 쭈뼛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모두가 이런 것에 익숙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낼 만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낯선 풍경 앞에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단돈(?) 5천 원이라는 가격에 몇 시간이나 이렇게 좁은 복도에 쭈그려 앉아가면서 까지 오페라를 봐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순간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이 떠올랐다. 거기에도 입석표가 있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혹은 내가 잘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두 공연장에 입석표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 살짝 검색해보니 때마침 2019년 10월 30일 ~ 11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우연히 '돈 지오반니' 오페라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티켓은 가장 저렴한 것이 3만 원이고 가장 비싼 것은 12만 원이다. 전부 좌석이고 입석은 없는 것 같다.


물론,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입석을 만들지 않은. 그래도 왠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5천 원짜리 입석표를 떠올리면 아쉬워진다. 3만 원도 나름 훌륭한 금액이지만 그 보다 저렴한 가격이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문화를 즐길 수 있을거다. 오페라가 대중화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경제적인 면일 텐데 그 벽을 조금 낮출 수 있지 않았을까..


맨 뒤쪽에서 오랜 시간 서 있는 것이 조금 불편할 수는 있으나 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든 아닌 사람이든 어떻게든 같은 공연을 볼 수 있게 한 것. 그것이 바로 문화수도가 생각하는 작은 배려이며 작은 차이이며 정의(Justice) 아닐까? 그리고 이 차이가 바로 명품 문화수도를 만든 것 아닐까. 돈이 많지 않아도 이런 훌륭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과 빈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부러웠다.


이런 것을 저력이라 해야하나 저변이라 해야하나 아니면 둘 다 맞으려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오페라를 즐긴 수많은 사람들은(남녀노소할 것 없이) 또 다시 오페라 문화를 주변에 확산시킬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오페라를 보고 자란 덕분에 오페라를 만들거나 오페라 시설을 만들거나 관련 업종에 종사할 수도 있겠다. 어른들은 어제 본 오페라 공연에 대해 여기저기 얘기를 나눌 수도 있겠다. 이런 것들이 모여 또 다시 오페라 문화는 넓어지고 깊어지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겠지. 선순환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극장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 2시간 정도 줄 서서 기다리다 보니 뒷사람과 앞사람이 괜히 친숙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에 줄 서 있는 두 명에게 말을 걸어봤다. 둘 다 내 또래였는데 한 명은 경제학 도고 한 명은 미술 역사학도였다. 러시아에서 왔는데 자동차를 타고 동유럽을 여행 중이라고 했다.



자신들 외에도 일행이 몇 명 더 있는데 오페라에 관심이 없어서 안 왔다고 했다. 서로 길지 않은 영어로 이것저것 얘기하려니 힘들었다. 대화 중간중간 안내원이 돌아다니며 복장 검사를 했다.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은 전부 입장을 거부당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하자 안내원은 우리를 공연장 안으로 들여보낸다. 난생처음 보는 오페라 극장의 위용이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입석 자리는 공연장의 맨 뒤에 있다. 같은 입석 줄이었지만 일찍 온 나는 맨 앞줄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들어간 공연장은 객석이 무료 2,200여 개나 되는 무시무시하게 큰 곳이었다. (그런데 내 자리 하나 없..)


입석 자리를 확인하고 잠시 오페라 극장 내부를 구경하기 위해 공연장 밖으로 나온다. 복도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럭셔리함과 문화의 향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온통 격식 있는 옷차림 투성이라 '침착하자 촌놈 티를 내지 말자' 맘 속으로 수업이 외쳤다.



공연시간이 되자 그 큰 공연장을 어디선가 물밀듯이 쏟아져오는 인파가 빼곡히 채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은 나 혼자 뿐. 잠시 오페라 '돈 조반니'에 대한 설명을 해보자. (출처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잠깐 작품 설명을 하면, '돈 조반니'는 모차르트 생애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모차르트와 당대의 인기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가 합작했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라는 인물을 통해 그 당시 신분제와 귀족계급의 타락을 비판했으며, 그 외의 등장인물들에게 일반인들의 인식을 투영하여 당대 인간군상의 심리를 그려냈다.

하지만 오페라를 볼 당시에는 돈 조반니가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배우들이 쓰는 언어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가 아니었던 탓에 무슨 내용인지 알 수도 없었다.


다행히 입석 난간에는 배우들의 대사를 번역해주는 LCD창이 달려있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배우들의 공연을 보며 흘끔흘끔 LCD 창을 통해 내용을 파악했다. (영어 외에도 오스트리아어 자막 선택도 가능)


공연이 아닌 커튼콜 장면을 찍었습니다. 입석 자리에서 보면 대략 저 정도 거리입니다


입석이 무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배우들의 자세한 표정연기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내 옆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를 대비해 휴대용 망원경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입석은 표에 따로 좌석 표시가 되어있는 게 아니라서 자신의 물건으로 ‘여기 내 자리!’라고 표시를 해 둬야 한다. 무난하게 손수건으로 난간에 묶어 놓으면 OK. 그리고 소지품이 번거롭고 귀찮다 싶으면 오페라 하우스 1층 짐 보관소에 맡겨놓을 수 있다.


한창 공연을 하다가 배우들이 잠깐 커튼콜 하고 공연장에 불이 들어와서 ‘이제 끝났나? 나가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 물건을 두고 가길래 뭐지.. 하다가 눈치채 보니 ACT1이 끝나서 중간 휴식시간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무식하게 ACT1 만 보고 나갈 뻔했으니..


입석 아래에 달린 LCD는 고개를 90도 아래로 꺾어 봐야 해서 불편했다. 앞 좌석에 달린 LCD가 오히려 보기 편한 수준


쉬는 시간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입석 아래에 달린 LCD를 보는 건 너무 불편했고, 왠지 바로 앞 좌석에 달린 LCD를 보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마참 볼일을 마치고 해당 자리로 돌아오시는 할머님을 보고 무모하게 '실례지만 앞에 있는 LCD 화면의 언어를 영어로 선택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여쭤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례 부탁임에도 할머니는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게다가 공연 내내 뒤에 서 있는 나를 의식하셔서 행여나 본인이 내가 보고 있는 스크린을 가릴까 봐 조심하시는 눈치였다. 솔직히 할머님 스크린이 잘 안 보여서 그냥 ACT2는 대화는 못 알아듣고 분위기만 느꼈지만 할머님의 배려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다음 쉬는 시간에 그 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연세는 85세시고 앉으신 그 좌석을 10년째 예약 중이며 오스트리아에서 빈에서 자랐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내내 무언가 기품 있고 고상하면서도 위엄 있는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렸다.



오페라가 다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했다. 그리고 객석에 불이 들어오고 관객들이 하나 둘 빠져나갈 즘 할머님께서 내게 행운을 빌어주셨다. 좌석층으로 내려가서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장내가 워낙 혼란스러워서 그러지 못했다. 행여나 오페라 극장 밖에서 뵐 수 있을까 싶어서 5분 정도 기다려 봤는데 나오지 않으셔서 극장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쉽게 숙소로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고급문화를 일반 대중이 향유할 수 있게 해 준 빈의 작은 배려와 그런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문화를 즐기는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몸에 베이신 할머니. 생각이 깊고 무거워지는 밤이었다.



3년이 지난 뒤 오스트리아 빈에 다시 방문할 일이 있었다. 옛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오페라 극장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이번에도 해가 저문 밤에 찾아갔는데 이제는 입석표에서 모잘라 아예 극장 외벽에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공연장 내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 이 사람들.. 이것은 정말 공평과 공정을 넘어선 정의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세계적인 문화수도 빈과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차이가 결국 명품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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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photo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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