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라는 걸 해봅시다
왜 하필 캐나다 로키 캠핑카 여행일까?
여행 꽤나 다녔다고 자부했다. 첫 여행은 모든지 서툴렀지만 지금은 웬만한 여행 준비는 전 날 해도 충분하고, 준비가 덜 되었어도 현지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여행에 관해 도가 텄다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을 편하게 다녔을 뿐이었다. 여행에도 난이도가 있다면 중급자 코스를 무난하게 통과하는 정도? 나는 그보다 더 독특하고 특별한 여행이 하고 싶어 졌다.
대도시보다는 작은 마을 혹은 대자연을 꿰뚫는 여행을 선호하기에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아니라 자연 한가운데 파묻히고 싶었다. 그러다 시선에 닿은 게 바로 캐나다 로키 캠핑카 여행이다.
캠핑카 여행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는 기존 숙소와 달리 장소와 이동에 제약이 없으며 캠핑카 안에서 먹고 쉬고 잘 수 있으니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울 수 있다. 또한 캠핑장에 가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숙소와 달리 자연 한가운데 파묻혀 하룻밤을 보낼 수도 있다.
라고 여행을 떠나기 전 생각했다
하지만 캐나다 로키 캠핑카 여행은 지금까지의 (상대적으로) 편한 여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야 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 조금 더 망설였을 것 같다. 아니, 차라리 몰랐기 때문에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간 2018년 7월 약 9일 동안 캐나다 로키산맥을 캠핑카로 다녀왔다. 로키는 워낙 광대한 범위에 걸쳐 있고 이곳을 전부 여행한다는 건 무리다. 그래서 대부분 여행자들이 자주 가는 코스인 밴프-재스퍼 두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아다녔다.
사실 로키 캠핑카 여행은 2017년에도 한 번 시도한 적이 있었다. 늑장 부리다가 8월 여행을 목표로 7월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캠핑카 예약에서부터 막혔다. 도대체 어떤 차를 어디서 예약해야 하는 건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캠핑카는 예약이 이미 완료되었으며 불필요하게 큰 캠핑카만 남아 있었다.
두 번째는 캠핑카를 이용할 수 있는 캠핑장 site 예약이 불가했다. 전부 예약이 끝난 것. 캠핑카도 못 빌려, 캠핑카를 주차할 수 있는 캠핑 site도 예약 안돼, 여행은 그대로 취소되었다. 그래서 다른 여행과는 달리 2018년 캠핑카 여행은 여행 출발일인 7월보다 훨씬 앞선 2월부터 준비했다.
로키를 캠핑카로 여행하려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정말 너무도 많다. 미리 예약해야 할 것을 제 때 하지 않으면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비행기 티켓보다 더 중요한 것?
비행기 티켓보다 더 먼저 예약해야 하는 것은 바로 로키산맥 국립 캠프 그라운드다. 쉽게 말해 캠핑카를 주차하고 식수와 전기를 연결해서 편히 쓸 수 있는 곳이다. 로키산맥 여행은 7~8월이 성수기고 이때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해마다 연 초 캠프장 예약은 필수다.
더군다나 캠핑카를 가져간다면 식수나 전기를 쓸 수 있는 캠핑 site가 필요한데 거의 전 지구적 경쟁이 시작된다. 대학교 수강신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이야 전체적인 예약 과정이 머릿속에 들어있으니 어렵지 않지만 처음 캠핑 site를 예약할 때는 뭐가 뭔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다짜고짜 비행기 티켓 먼저 끊어놓고 '캠핑 site는 나중에 시간 될 때 예약해야지' 라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예약을 해야'만' 하는 곳들은 이미 다 차있어서 매일 밤 퇴근하고 수강신청하듯 새로고침을 계속 누르며 초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하늘이 도와 가까스로 캠핑 site를 예약했으니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비행기 티켓마저 바꿔야 할 위기에 처할 뻔했다. (물론 비성수기에 놀러 간다면 이렇게 부지런히 예약할 필요는 없다)
로키 국립 캠프그라운드 예약은 https://reservation.pc.gc.ca/Home.aspx 에서 하면 된다. 사실 N블로그나 D블로그 T스토리 등에 캠프 그라운드 예약방법을 상세히 알려주는 분들이 많아서 여기선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사이트에 접속하면 우선 Sign In(회원가입)을 하고, 예약을 시작한다. Reservation Type은 맨 위에 있는 Frontcountry Camping을 체크하고, Park는 어느 국립 캠프 그라운드를 갈지 설정하는 곳이고, 그 밑에는 도착 날짜 이용 날짜 떠나는 날짜 등을 체크할 수 있다.
Equipment는 캠핑카의 크기를 지정하는 곳인데 본인이 예약한 캠핑카를 정확히 선택해야 한다. 캠핑카 크기 선택에 따라 예약할 수 있는 캠핑 site가 달라진다. 나는 큰 캠핑카를 예약했는데 내가 예약한 캠프 site가 그 캠핑카를 수용 못하면? 이용할 수가 없다. (물론 내 캠핑카에서 한 두 급 정도는 차이가 나도 이용 가능하다)
Party size는 인원수인데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캠핑카 크기를 맞추는 게 중요할 뿐. Search Preference는 선택 조건 걸기 개념인데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시설에 체크하면 해당하는 캠프 site만 나타난다. 조건을 많이 체크할수록 검색되는 캠프 site는 줄어든다.
이도 저도 복잡하면 바로 캠프 그라운드로 이동해보자. 왼쪽 아래 On a Map을 누르면 캠프 그라운드 별로 예약 현황이 한눈에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여행한 지역인 벤프 지역의 캠프 그라운드를 보려면 Banff National Park of Canada를 검색하자. 그러면 아래와 같이 그 지역의 캠프 그라운드가 나오고 동그란 원의 색상에 따라 예약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왼쪽 아래 Tunnel Mountain Trailler Court라고 되어 있는 곳 옆에 있는 자동차와 전기 아이콘이 바로 캠핑카를 쓸 수 있다는 표시다. 이 캠프 그라운드는 캠핑카 전용구역이라 캠핑카를 이용할 수 있는 site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런 표시가 없는 캠프 그라운드에도 캠핑카를 이용할 수 있는 site가 있다. 다만 그 수가 많지 않을 뿐.
어느 캠핑장이든 캠핑카를 주차해서 이용할 수 있는 site는 있다. 다만 전기나 식수 연결이 되는 곳은 그 수가 매우 적다.
자동차 표시는 없지만 노란색 원에 있는 것처럼 콘센트 표시가 있는 곳은 캠핑카를 주차하고 전기 혹은 식수를 사용할 수 있는 캠핑 site다. 굳이 전기나 식수를 꼭 써야 할 이유는 없지만, 캠핑카 여행 일정이 길면 길수록 전기나 식수를 쓸 수 있는 site는 중간중간 꼭 끼어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기도 못쓰고 물도 쓸 수 없는 상황에 닥친다.
캠핑장 예약 내용이 너무 길어지면 안 되니까 이 정도로 줄여본다. 캠핑장에 대한 얘기는 앞으로 여행기에 많이 나올 테니.. 다음은 캠핑카를 예약해보자.
긴 여행 동안 나의 동반자가 되어줄 캠핑카
외국에 나가서 일반 승용차 운전은 몇 번 해보았지만 캠핑카는 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운전해본 적이 없다. '캠핑카' 하면 떠오르는 건 어마어마한 덩치의 차들인데 안전하게 잘 운전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캠핑카도 그 종류가 워낙 다양해서 자기 취향 자기 능력에 맞는 차를 고를 수 있다.
캐나다 캠핑카 예약을 위해 이것저것 둘러보니 대략 몇 개 회사가 눈에 띈다. 가장 많이들 이용하는 곳은 '캐나 드림'이라는 곳이다. 근데 여기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생각보다 비싸다. 조금 더 알아보니 캐나다의 캠핑카 회사 몇 군데를 한 번에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었다.
https://www.motorhomerepublic.com/ 이상하게 여기서 예약을 하면 개별 사이트에서 하는 것보다 싸다. 근데 문제는 어떤 종류의 캠핑카를 렌트할 것이냐인데.. 내가 막연히 꿈꿔왔던? 상상했던? 캠핑카는 바로.. 이런 거?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면 딱 mid-size로 분류되는 것 같다. 대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다면 이보다 더 큰 사이즈의 캠핑카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거?
하지만 거의 버스 수준의 크기라 운전하거나 주차하는데 크게 애를 먹을 것 같았다. 이보다는 훨씬 더 작은 사이인 하나 작은 사이즈인 MH C-Medium을 할까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옵션을 넣다 보니 가격이 훌쩍 올라서 가장 작은 사이즈인 MH C-Small로 신청했더니 차가 없다고 한다. 몇 군데 회사를 돌아가며 신청했더니 전부 없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낙찰받은 차는 Van Conversion.
처음부터 이 녀석을 외면한 이유는 그냥 이왕 캠핑카 여행을 할 거면 좀 그럴듯한? 캠핑카스러운? 것을 몰고 싶었는데 이 차는 뭐랄까 좀 캠핑카 같지 않아서? 운전이나 주차는 편해 보였지만 국내 어느 블로그를 봐도 이 차에 대한 이용 후기도 없었고 당시엔 걱정 반 근심반이었다. (합쳐서 걱정 근심이 백)
하지만 막상 여행을 다녀와서는 이 차에 굉장히 만족했다. 소수 인원이 이용하기에 크기도 적당했고, 주차도 편했고 기동성도 좋았고 작은 캠핑카가 들어가는 캠프 site는 전부 이용 가능했다. 캠핑카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해보도록 하자.
그래도 비행기는 중요하다
캠핑장도 예약했고, 캠핑카도 예약했으면 이제 비행기 표를 예매해보자. 비행기표? 그게 뭐가 중요해? 할 수도 있지만 밴프 여행의 시작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행선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중요하다.
로키 여행은 밴쿠버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캘거리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밴쿠버에서 시작할 경우, 밴쿠버 공항에서 내려서 차를 렌트하고 10시간 운전해서 밴프로 가면 된다(...)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10시간 운전하는 게 너무 가혹하다면 밴쿠버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캘거리로 간 뒤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부터 상쾌하게 로키를 여행하면 된다. 난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모든 걸 불태웠다
9일간 지낼 캠프 site와 캠핑카, 그리고 비행기표를 끊고 모든 걸 하얗게 불태운 듯 더 이상 여행 준비를 하지 않았다. 캠핑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를 밴쿠버 숙소만 정하고 한동안 여행 준비를 손에서 놨다. 이렇게 힘든? 여행 준비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힘든 만큼 값진 여행이 되었다. 어떻게? 앞으로 하나씩 풀어가보겠다. 캠핑장이나 캠핑카에 대한 설명이 조금 부족한 것들은 현재 글을 수정하거나 앞으로 나올 여행기에서 조금 더 다뤄보겠다. 그러면, 캠핑카 여행 시작!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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