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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ny Oct 12. 2019

지붕 없는 호텔, 캐나다 캠핑장


캐나다 로키 국립 캠핑장을 가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캠핑장 풍경은 이랬다. 숲이 아닌 공터에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캠핑 site는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사생활은 전혀 보호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려 여유와는 거리가 먼 곳.


출처: 중앙일보

사진으로 표현하면 딱 위와 같은 모습일 거다. 흔히 생각하는 '캠핑'의 낭만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찾아보니 국내에 좋은 캠핑장도 많더군요!) 고요한 자연 속에 머물며 여유를 즐겨야 하는데 조용하지도 않고 자연 속도 아니고 여유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캐나다 국립공원 캠핑장이라면 캠핑족이 꿈꾸는 모든 것을 충족한다. 



로키 국립공원 게이트를 지나 첫 번째 캐나다 로키 캠핑장인 터널 마운틴 빌리지 II로 들어가 본다. 지도로 봤을 때도 정말 광활했는데 실제로 캠핑장 안에 들어가 보니 이렇게나 넓어?라고 놀란다. 크기 가늠이 제대로 되지 않을 분들을 위해 구글 신을 소환해본다. 



저 광활한 대지가 전부 캠프 그라운드다. '캠프장 가면 걸으면서 산책해야지'라고 생각도 해봤는데 실제 저 광활한 풍경을 보고 나니 차로 산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고, 걸으면서 산책하면 반나절 정도 걸리고 몸져눕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이렇게나 광활하다. 거대한 캠핑카도 무리 없이 다녀야 했기에 중앙도로는 굉장히 넓고 그 양옆으로 캠핑카를 주차할 수 있는 site도 높다란 나무 숲 사이에 넉넉한 크기로 자리 잡고 있다. 빽빽하고 빡빡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한가운데 멀리 보이는 로키의 웅장한 모습이 그야말로 '자연 속'에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예약했던 구간을 찾았고 거기에 캠핑카를 주차한다. 내가 예약한 캠핑카보다 훨씬 큰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넉넉하고 여유롭게 공간을 쓸 수 있었다. 차는 전기와 수도를 연결하는 기둥? 바로 옆에 주차한다. 그래야 호스나 전기 케이블 연결이 용이하다. 왼쪽 뒷바퀴 바로 앞에 있는 구멍은 오물을 버리는 곳이다. 


지금이야 모든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는데 캠핑카를 주차해놓고 전기는 어떻게 연결을 하고, 수도는 어떻게 연결하며 오물은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굉장히 막막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글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수없이 해봤는데 역시 글로 배운건 소용이 없다.


아직 식수탱크에는 여유가 있었고, 잠시 쉬며 전기도 쓰고 수도를 쓰면서 오물 탱크에 버리지 않고 바로 호스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전기와 오물 호스만 세팅해보도록 한다. 



캠핑카마다 구조는 다르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동일하다. Van Conversion의 경우 뒷문을 열면 도끼가 보이고(시선강탈) 수도를 연결할 수 있는 마개가 보인다(fresh water라 적힌 곳). 도끼날 바로 옆에 있는 sewer hose는 오물을 버리는 호스다. 꺼내서 차량 아랫 편에 있는 오물 버리는 곳? 과 연결해서 빼버리자. 여기서 말하는 오물이란 캠핑카 내에서 다시 쓸 수 없는 각종 액체를 통칭한다. 


전기/수도/오물 연결 중 가장 헷갈렸던 게.. City water랑 tank water였는데 저기 fresh water 커넥션에 물을 담으면 자동차 안에 있는 물탱크에 물을 저장하는 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물을 쓸 수 있고 차량 내부의 펌프를 통해 물을 공급해준다.


근데, 캠핑 사이트에 수도시설이 있다면 굳이 저기에 담아두지 않고 차량 옆에 있는 city water 커넥션에 연결해서 주차하는 내내 그냥 편히 사용하는 게 좋다. 수압 차이에 의해 물을 공급해주니 펌프를 안 써서 좋다. 이렇게 써도 사실 직접 해보지 않은 분을은 '이게 뭔 소리지' 싶을 거다. 나도 그랬으니까



수도를 제외한 전기와 오물 호스 세팅을 마친 모습. 사실 경황이 없어서 친절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사진이고 뭐고 일단 제대로 연결하는 게 중요했으니 중간과정 생략. 


전기 연결할 때 한 가지 주의점은 차량별로 허용되는 전압 체크. 최대한 높은 볼트를 연결하는 게 좋다. 그래야 차량 안의 모든 전자 기기들이 빵빵하게 돌아간다. 전기 커넥터는 굉장히 무식하게 생겼지만 연결이 어렵거나 무섭지 않고 안전하다. 


오물의 경우 주의할 점은.. 일단 손에 묻히지 않는 것?(...) 그리고 제 때 버리지 않으면 오물 탱크가 꽉 차서..(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캠핑 site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각기 다르다. 전기/식수/오물 중 셋 다 사용 가능한 곳이 있고 두 개만 사용 가능한 곳이 있고 한 가지만 사용 가능한 것이 있다. 


경험상 제일 중요한 건 전기였다. 7월에 놀러 갔지만 한 밤중이 되면 상당히 춥다. 그래서 온열기를 돌려야 할 때도 있고 휴대폰이나 카메라 배터리 등 충전해야 할 전기제품, 냉장고처럼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도와 오물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수도 탱크도 오물 탱크도 있어서 수도보급이나 오물 버리는 시설이 없어도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상은 쓰기 나름이지만 무리.


전기 시설은 꼭 캠프 site에 붙어 있는 걸 이용했는데 수도나 오물은 캠프 site에 없고 캠프 그라운드 내 오물 버리는 곳에서 따로 버릴 수 있기도 하다. 



처음이라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어떻게든 다 되는 것 같다. 캠핑카도 잘 렌터 하고 일주일치 식량도 확보했고, 캠핑장도 잘 찾아서 캠핑 site 와서 주차하고 전기도 연결하고 오물도 버려보았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비로소 한국에서부터 계속 이어진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본격 캠핑카 여행이 시작된다는 기쁨이 그 자리를 메운다. 


냉큼 요리 재료를 꺼내본다. 구색만 갖춰진 가스레인지와 요리 도구였지만 캐나다 캠핑카 여행의 역사적 한 끼를 만드는데 충분했다. 캐나다 마트에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구입했던 고기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 (고기는 언제나 옳다). 


성인이 되어서는 단 한 번도 캠핑을 해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땐 아버지를 따라 몇 번..) 그래서 공기 맑은 숲 속에서 무언가를 조리하고 먹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컵라면에 햇반, 그리고 고기 몇 덩이였지만 먹는 장소가 장소인 만큼 조리도 즐겁고 평소 먹었던 음식의 맛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이래서 캠핑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돈했다. 쓰레기들은 근처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 야생동물들이 쉽게 열지 못하도록 뚜껑이 굉장히 무겁고 열기 힘들게 되어 있다. 과연 야생동물들이 실제로 캠핑장 안에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딘가의 글에서는 곰을 봤다, 어딘가의 글에서는 사슴을 봤다 얘기가 많았는데 나도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 (과연!)


쓰레기장을 지나쳐 또 한참을 걷다 보니 뭔가 관리사무소 같은 것이 보였다. 사람이 있는 건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니 그것은 화장실과 샤워실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공공 화장실은 이보다 더 더러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관리사무소라 착각할 정도로 겉모습도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었고 안쪽은 더 깔끔하고 깨끗했다. 


아무래도 국립 캠프그라운드 자체가 입장료가 있고 그 안에 관리비가 포함되는 만큼 생각보다 철저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캠프장에서 몇 박을 머물며 화장실이든 샤워장이든 어디든 시시각각 청소하시는 분들이나 캠프장 크루들이 돌아다니며 씻고 닦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치 일반적인 호텔에서 청소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고단했던 캠핑장 이동 및 세팅을 마치고 잠시 꿀 같은 낮잠을 즐겼다. 갑갑한 숙소에서 자는 게 아니라 광활한 로키산맥의 품 속에서 싱그러운 여름향기를 맡으며 잠들 수 있는 게 바로 로키 캠핑카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깨어 일어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급할 건 없다. 쫓길 것도 없다. 쉬고 싶으면 그냥 바로 자면 되고, 어딘가 가고 싶으면 바로 운전해서 가면 된다. 



짧은 여유를 즐기고 다시 운전석에 올라탄다. 그래도, 다음 행선지는 가야 하니까. 국립공원 티켓은 차량 앞유리 한쪽에 붙여놓아야 (불심) 검문받을 때 편하다. 캠핑장 입장 티켓도 그냥 대시보드에 던져두면 된다. 


 Van Conversion 캠핑카의 운전석을 살펴보자. 밴이라 해서 투박할 줄 알았는데 웬만한 승용차 수준의 편의 기능을 갖췄다. 가장 놀랐던 건 후방모니터(카메라) 였는데 차가 크다 보니 후진이 걱정되었는데 화각이나 선명도 등등이 매우 좋아서 후진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후술 하겠지만 덩치에 비해 차도 잘 나갔고 일반 모터홈에 비해 크기도 작아서 주차하기도 편리했다. 



이번 캠핑카 여행에선 사실 캠핑장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로키 내에서도 즐길거리가 많아서 캠핑장은 정말 잠시 머물러 먹고 자는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만약 다음에 또 로키를 갈 기회가 된다면 캠핑장만 어슬렁 거려도 하루가 잘 갈 것 같다. 워낙 캠핑장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깔끔하고 깨끗하고.


 마치 벽과 지붕이 없는 호텔느낌.. 이제 슬슬 벤프로 향해본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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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photo by la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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