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숨겨둔 마음을 꺼내는 일

상처를 말 대신 문장으로 적었을 때, 처음으로 가벼워졌다.

by 월화수 엔 Jane

라면이 불어 터지고 있었다. 노트북 앞에서 손가락이 망설였다.

갑자기 왜 그때 일이 떠올랐을까.

"나는... 어릴 때…" 목이 꽉 막혔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숙이 묻어두면 그것이 상처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냥 가끔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몸이 움츠러든다.

그런 것 중 하나가 내게도 있었다.



국학교 6학년 종례시간이었다.

종이를 담배처럼 말아 피우는 시늉을 하던 아이가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교단 앞으로 불러 세웠다.

갑자기 슬리퍼 신은 발로 아이 배를 차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이번엔 손으로 뺨을 때렸다.

나는 얼어붙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벌어지는 일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그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녔다.

상사가 화를 내거나 갑작스러운 큰 소리가 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그때 그 교실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냥 "나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나는 그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나는 어릴 때 정말 무서운 걸 봤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교실의 형광등 소리, 아이들이 숨죽이고 있던 정적,

그리고 내가 느꼈던 그 답답한 공포까지 하나씩 적었다.

글을 쓰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때의 나에게 미안했다.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어린 나에게.



글이 끝났을 때, 신기하게도 가슴이 조금 가벼워졌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문득 이 이야기를 혼자만 간직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만 이런 건 아닐 거라는 확신도 생겼다.

그래서 그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공감돼요. 용기 내줘서 고마워요."

댓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고 있었다.



이제는 상처받아도 예전처럼 오래 품고 있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하면 종이 위에 풀어놓는다.

구겨서 버리거나 찢어버리면 속이 시원해진다.

글을 쓰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상처를 숨기는 것과 치유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숨기면 영원히 내 안에서 자라나지만,

꺼내어 마주하면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



혹시 당신도 말로 꺼내기 힘든 기억이 있다면,

오늘 밤 조용히 한 문장만 적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예전에..."

그다음은 내일 써도 되고, 다음 주에 써도 된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다.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적어도 더 이상 혼자 그 무게를 떠안고 있지는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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