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온도가 표시되는 샤워기를 쓴다. 요즘 같이 추운 날씨엔 온도 조절 손잡이를 돌려 온도를 점점 높여나가는데 아무리 높여도 40도가 내 한계다. 물이 끓어오르는 줄 모르고 있다가 서서히 익어서 죽는다는 바보같은 개구리 꼴이 나지 않기 위해 내 육체가 본능적으로 방어하는 한계선이다. 40도와 41도는 미묘하게도 완전히 다르다.
이런 미묘한 선은 오로지 직감으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적당한 선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버린다면 바보, 무능한 사람, 예의 없는 사람,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은 우리는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설정해놓고 엉뚱해도 되는 만큼만 엉뚱하고 무례해도 되는 만큼만 무례하다. 순진한 건지 착한 건지 우리는 이런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은 악착같이 넘지 않으려고 애쓴다. 정작 넘어야 되는 선은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넘지 말아야 되는 선이 ‘이왕 하는 거 문제 생기지 않게 하자’라면 넘어야 되는 선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다. 나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 넘어야 되는 선은 기본적으로 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직장에 들어와서 어른들과 생활해보니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았다. 휴지통에 쓰레기를 넣으려고 할 때 휴지통이 꽉 차서 쓰레기가 삐져나와 있으면 조금만 힘을 줘서 쌓여 있는 쓰레기를 누르며 넣으면 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쓰레기를 살포시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올려 놓고 갈 뿐이었다. 또 옷장에 옷을 넣었는데 옷이 옷장과 문 사이에 껴서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으면 다시 옷을 넣고 문을 닫으면 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쓰레기가 넘치는 채로 옷장 문이 열린 채로 두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봤다. 그런 사람이 과연 업무에 적극적이고 꼼꼼하게 임할지는 미지수다.
내가 요즘 부쩍 부지런해지고 성실해진 데에는 위와 같이 넘어야 할 선을 넘지 않는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은 이유도 있다. 단순히 쓰레기를 제대로 버리는 일뿐만이 아닌 마음 먹은 것을 제대로 지키는 일도 넘어야 할 선 중에 하나이고,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않고 있는 일이기에, 꽤 해볼 만한 일이 되었다. 40도와 41도가 다른 것처럼, 농담의 쾌와 불쾌를 가르는 선이 다른 것처럼, 남들보다 조금 더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 미묘한 차이를 이제야 깨달았다. 단순히 깨닫고 마는 것과 깨닫고 실천하는 것의 차이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 내일도 선을 조금 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