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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Dec 18. 2019

우울했던 날과 지금의 삶

횡단보도에만 서면 정차해있는 차들 중 하나가 나에게 달려와 내 무릎을 박살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게 싫지만은 않아 차라리 나를 치고 갔으면 하고 바랐던 기억이 있다. 같은 시기에 나는 건물에만 들어가면 높이를 가늠해보곤 했다. 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한 번에 생을 끝낼 수 있을지 옥상 문은 열려 있을지 열려 있지 않다면 가장 높이 열려 있는 창문에서 떨어지는 건 어떨지 상상했다. 그러면서도 지나가는 행인이나 나의 흔적을 치우게 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커다란 포대에 들어가서 안쪽에서 매듭을 묶고 떨어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는 일이다. 참, 포대는 당연히 방수 포대여야 한다. 내 죽음이 깔끔했으면 하고 바랐다. 어느 날에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아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적당한 끈과 끈을 묶을 적당한 높이의 거치대를 찾았다. 아쉽게도 내 키에 비해 적당한 높이의 거치대를 찾을 수 없었다. 적당하다는 건 항상 문제가 된다. 이 시기에 내가 번개탄을 몰랐다는 건 천만 다행이다.


우울증은 놀랍게도 나의 모든 과거를 어둠 속으로 처박아 넣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지 헤아려보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과거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건 과거를 탓하는 일뿐이었음을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나는 과거의 선택과 만남과 운명을 탓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나를 위해 희생하느라 당신들의 삶을 돌볼 여유조차 없었을 부모님까지도 쉽게 할퀴어 버렸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기만 할 뿐이다. 우울증은 과거를 어둠으로 덮어버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래 또한 새까맣게 칠해버렸다. 종말을 주제로 한 영화에서 하늘이 점점 저주의 빛으로 가득차듯이 나의 세계 또한 불길한 기운에 잠식당해갔다. 어리석게도 이 때 나는 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성적 판단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결국엔 엉켜버린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통받는 현재의 나를 없애는 것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각했다.


이 시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 떠오른 문장이 하나 있다. <<내 머리 속에는 울음이 가득 차있다.>>   나는 정말 내 동그란 두개골 안에 먹구름 같은 울음이 가득차있다고 느꼈다. 이게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밀폐된 흡연실 하나가 머리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흡연실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 차서 어디든 틈새만 보이면 새어 나온다. 좁은 틈새로 악착같이 나와버리는 것들이 다 그러하듯 연기는 가늘고 길게 뿜어진다. 마치 눈물처럼, 주륵주륵. 그렇게 내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정도 흘렸으면 더 이상 흐를 눈물도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눈물은 끊임없이 생성되어 흘렀다. 내 몸이 고장났다고 생각했다. 울면 울수록 우울은 심해지기만 했고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왔다. 나는 머리를 깨뜨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 생에 대한 애정은 식을 대로 식어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날이 많았다. 내가 봐도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시체 같이 보였던 어느 날에는 어깨가 아프다는 엄마를 따라 병원에 갔다. 엄마가 진료실에 들어간 사이 나는 데스크 옆에 놓인 혈압 측정기를 보고 문득 내가 얼마나 시들어가고 있나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도 진료실에 들어가 아무도 없던 참이었다.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는 조심스레 손때 묻은 혈압 측정기에 팔을 넣었다. 팔에 압력이 들어왔다가 ‘이러다가 팔이 터지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에 빠졌다. 분명 무언가 숨겨진 원리가 있겠지만 혈압 측정기는 항상 그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아는 것 같다. ‘삐-‘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상단부에 내 혈압이 표시됐다. 측정기의 뒤쪽에서는 영수증처럼 결과지가 출력되고 있었다. 나는 결과지는 챙기지 앉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나중에 데스크로 돌아와 내 결과지를 발견한 간호사들은 이게 누구 거냐며 혈압이 너무 낮다며 놀란 목소리로 수군거렸는데, 나는 더 낮아져서 그냥 죽어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누구도 그런 내 상태를 알아채지 못 했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또 다른 날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글자가 보이지 않아 그냥 가방을 싸고 집으로 걸어왔다. 평소 같으면 40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집에 도착한 후 시계를 보니 2시간이 지나있었던 건 이제는 꿈에서 벌어진 일만 같다. 이 때 썼던 글도 지금 읽어보면 믿기지가 않는다. 모든 건물이 마치 폭격이라도 받은 듯 창문이 깨지고 시멘트 가루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피폐한 어느 도시 한 가운데에 거대한 피의 강이 흐른다. 이 도시에는 버림 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매일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이 도시에 버려진다. 이들은 햇빛을 무서워해 건물 안에만 숨어 산다. 그러나 건물이 이들을 수용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깨진 창문 너머로 매일 같이 인간 덩어리가 추락하고 피의 강은 마르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이런 어두운 글에만 흥미를 느꼈다.


다행히도 지금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정서적으로 꽤 안정적인 편이라고 느낀다. 마침내 우울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어 우울했던 날들에 대해 끄적여보았다. 조건부로 살아보자고, 딱 몇 년만 더 살아 보고 그 후에도 희망이 없으면 그 때 미련 없이 죽자고 내 자신과 약속했던 날조차도 이젠 지나가버렸다. 그동안의 삶이야 언제든 되돌아볼 수 있겠지만 간만에 우울했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기에 지금처럼 적당한 때도 없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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