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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Apr 24. 2020

詩 나는 언젠가

나는 언젠가 밤바다를 거닐며

가슴 가득히 쌓였던 한숨을 비워냈던 것만 같다.

그 바다에서 소리를 질렀던 것만 같다.

소리는 되돌아 오지 않고

파도의 철썩임에 잘게 부서졌던 것만 같다.

부질없는 것들이 나의 전부였고 그것들을 껴안아야만

이 삶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

나를 앗아갔던 것만 같다.


나는 또 언젠가 책과 식물이 가득한

근사한 서재를 가졌던 것만 같다.

그곳 창가에 앉아 손가락 끝으로 책장의 가장자리를 문지르며

깊은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만 같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창틀을 넘어와

머리칼을 스쳤던 것만 같다.

찰나와 영원의 공존을 느끼며

그 모순 속에 눈 감고 싶었던 것만 같다.


밤 기운 서린 모래의 촉감과

바람에 스며든 문장의 향기는

한바탕 몰려온 공허에 대한 막막한 증거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선명한 심상과

부재하는 기억에

나는 자주 박탈당한다.


저항 없는 관성이 그린 궤도 위에서

나는 언젠가 들어본 적 없는 선율을 그리워 할 것만 같다.

뚜렷이 들리는 허구를 붙잡을 수 없어

몸서리 칠 것만 같다.

마침내 통증 없는 낭만은 없을 거라는

아득한 예감을 외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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