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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킴 Lake Kim
Jun 24. 2021
시간이 지날수록 망가져 가는 기계처럼 얼마 살지도 않은 몸이 자꾸 고장나버려서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고쳐서 쓰고 있다. 지난 주에는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에 가 엑스레이를 찍고 진통제를 받아 왔다. 앉아있어도 서있어도 누워있어도 허리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식후 30분’이라는 자명한 규칙을 깨고 식중에 약을 먹었다. 밥알과 함께 삼켜지는 알약에 대한 감상에 젖을 여유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빨리 흡수되라고 기도하는 일뿐. 센 약이라서 속이 울렁거릴 수도 있으니 정도가 심하면 반으로 나누어 먹으라던 약사의 경고가 무색하게 약효는 느린 속도로 퍼졌고 분명 온 몸에 퍼지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약도 안 듣겠다, 그나마 누워있을 때가 허리가 덜 아파 그냥 밥을 먹자 마자 침대에 몸을 누이자니 이번에는 식도염이 생길까 두려워 마음 놓고 누울 수도 없었다. 인간의 삶에 맞지 않는 인간의 몸을 거느리고 살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쉬지 않고 녹슬어버리는 생의 끈, 연약하고 가느다란 그 끈을 계속 닦아가며 살다가 끈의 마지막을 마주하거나, 미처 닦지 못한 끈이 끊어져버리거나, 누군가 와서 나의 끈을 끊어버리는 것. 그게 생이고 죽음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며 2016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청춘시대>의 주인공, 강이나를 떠올린다. 친구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지만 홀로 살아남은 그는 누구보다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뼈저리게 느끼며 그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어떤 방식이어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며 몸을 판 돈으로 명품을 사 화려하게 자신을 치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10년 후를 어떻게 아냐,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불안함이 묻어있다. 그 목소리는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목소리, 삶을 완전히 옥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망가뜨릴 수도 없는 까다로운 정도의 문제 앞에서 허둥지둥 대는 어리숙한 존재의 목소리다. 이나의 말대로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장 내일까지는 무사히 살아낼 것 같은 확신을 외면할 수 없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겠다고 하여도 지금 이 순간조차 내일을 향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에 우리는 평생동안 생과 사의 얇디 얇은 틈새에서 보잘 것 없는 저울질을 계속해야 하는 고된 운명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까지 사나 싶다가도 당장은 이 삶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다시금 치열해지고, 그러다가도 자칫하면 운 나쁘게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힘을 푸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저마다의 결심이나 유언을 새로 고치며 언제 해지될지 모르는 이 삶을 갱신해서 구독한다. 비용은 ‘셀프 서비스’ 정도. 그래서 나는 내일도 생명줄을 한층 더 끈질기게 만들기 위해 1만 5천보를 걷고 밥을 오래 씹어 먹고 식사 후에는 바로 양치를 하고 컴퓨터만 보다가도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먼 곳을 바라보려 한다. 기계가 고장나면 다 끝장이니까, 몸이 고장나면 다 소용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