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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May 18. 2019

신비를 품고 사는 사람

엄마는 나의 태몽을 말할 때마다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새-하얗고 굵-다란 뱀이,

부엌 가장자리를 타고 움직이다가,

새-하얀 쥐 한 마리를콱! 물었더니

온 부엌에 시-뻘건 피가 팍!하고 퍼졌어."


강조점이 들어가는 부분은 대게 변함이 없어서 나는 엄마가 말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게 나의 태몽을 읊을 수 있다. 나는 태몽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특히 새하얀 뱀이라든가 시뻘건 피가 등장하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꿈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버린 쥐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굵-다란 뱀이었을 것 같고(꼭 뱀이었으면 좋겠다.), 사방에 튄 붉은 피는 나의 생명이 피어났음을 알리는 지표이거나 축복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태몽에서는 듣기 힘든 희소성이 나의 탄생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다. 비록 용(龍)이 아닌 뱀이고, 한국사 시간에 한번쯤 듣게 되는 영웅들의 태몽처럼 오색찬란한 별이 쏟아진다거나 선녀들이 내려와 빛나는 씨앗을 선물하고 가는 그런 엄청난 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시한 꿈도 아니니 괜히 내 삶과 나 자신이 어느 정도는 특별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대학 수업 시간에 들었던 말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신비가 사라진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종교도 없고 요정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렇다면 '신비가 남아있는 세상'은 어떠한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었던 세상이 신비가 남아있는 세상일까? 이를테면 바닷가에 놀러가서 갑작스럽게 큰 파도가 치면 포세이돈께서 노하셨다고 믿고, 번개가 내리꽃힐 때는 북유럽 신화의 토르를 생각하는 게 신비일까? 그것도 아니면 세상 어디엔가 호그와트가 실재하며 J.K.롤링은 소문대로 쫓겨난 마법사라고 믿는 건 신비일까? 마녀의 저주를 믿었기에 마을의 예쁘거나 돈이 많은 과부를 잡아다 처형했던 중세시대를 신비를 믿었던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나의 태몽에 실체없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부터가 '신비'가 아닐까? 나는 어려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마치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종교인처럼 '이런 태몽을 갖고 태어났으니 분명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라고 믿곤 했다. 이 꿈이 아닌 다른 평범한 꿈을 갖고 태어났을 나의 인생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태몽은 아주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나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으로 신비를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이토록 신비로운 삶을 사는 나의 세계가 냉철한 과학으로 이루어지고 신비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대학교 수업시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믿고 있는 또 다른 신비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인 운세의 흐름이 주기적으로 변동한다고 믿는다. 나의 경우 여성의 생리 주기나 바이오리듬처럼 한 주에서 길게는 한 달정도 굉장히 불행하고 힘들게 지내면 그 이후엔 항상 두세 달 정도 엄청난 행운과 행복이 찾아온다. 체감상 그랬던 것뿐이고 생리주기를 표시하듯 달력에 표시해가며 따져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 모호한 운세의 흐름을 믿고 있다. 그래서 특히 힘들고 진이 빠지는 날이면 '그 주기'가 시작됐구나 하며 겨울잠을 자는 짐승처럼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행동을 주의하며 잠자코 기다린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금 빛나는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신비를 품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삶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다. 누구든 따지고 보면 각자 자기만의 신비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신비가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이라면,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그것을 먹고 똑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식의 부정적 미신만을 믿고 있다면 이런 것보다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믿음을 하나쯤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오늘부터 삶의 작은 변화를 관찰하여 나처럼 운세의 주기를 따져보는 것도 괜찮고 잊고 있었던 태몽을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당신에게도 신비가 찾아온다면(혹은 이미 갖고 있다면) 나와 카페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아주 일상적인 목소리로 서로의 신비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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