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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Aug 02. 2021

내 것이 아니라 여겼던 비극들

우리 사무실에는 심한 요통으로 고생하는 직원이 한 명 있다. 어느 날 다같이 책상을 옮겨야 했던 적이 있다. 그 직원은 책상 두 개를 옮겼을 뿐인데 허리가 아프다며 조퇴를 했다. 꾀병인 줄 알았다. 나보다 체격도 좋고 건장해보이는 성인 남성이 고작 책상 2개를 옮기고선 조퇴라니. 두고두고 우스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의 고통을 함부로 우습게 여겼던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처럼 점차 내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통증은 점점 심해져 지금은 몇 달째 그 때의 경솔했던 나를 반성하며 침상 안정을 취하고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똑같이 가소롭게 여긴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나쁜 것이 마냥 나쁘지만을 않으며 반대로 좋은 것이라 해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번 허리통증으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도 많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많다. 당연하다고 여긴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한다. 허리통증처럼 내 것이 아니라 여겼던 비극들은 언제든 쉽게 내 삶에 침투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시력을 좋게 하는 수술을 받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고 편도선에 염증이 생겨 눈물을 흘리며 목을 쨌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다. 내 팔자에는 없을 거라 확신했던 고통이 나를 비웃듯 슬며시 끼어드는 때가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아직까지도 내 것이 아닌 세상의 많은 비극들이 보인다. 그것들과의 거리감에 새삼 지금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안나 카레리나의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라는 첫 문장은 개인 차원에서도 유효하며, 그렇다면 저마다 다를 수 있는 수 십 만 가지 불행 중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 몇 가지만 갖고 있는 나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허리통증으로 직장생활이 어려워도 진통제를 먹으면 버틸 수 있다. 평생 코딱지만한 월급으로는 결혼해서 집을 장만하고 애를 키우기도 힘들 것 같다는 불안함을 느끼지만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니 제껴두기로 하자. 늦둥이로 태어나서 또래에 비해 부모님 나이가 많으시지만 두 분 다 건강하시니 이 또한 축복이다. 유독 치아가 약해 주기적으로 나가는 치과 치료비만 해도 어마어마하지만 매번 치료를 받을 때마다 발전하는 의료기술의 혜택을 누리며 치아의 명줄을 연장시켜나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몇 푼의 돈으로 최첨단 과학의 혜택을 누린다는 건 참으로 감사햘 일이므로 다음 치료 때는 더 좋은 기술이 나오리라 믿으며 열심히 저금을 한다.

한편으로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살얼음이 아직 깨지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다. 감사를 받을 대상도 없으면서, 감사하는 만큼 깨지지 않길 바라며. 그 간절함만큼 행복하고 다행이라 여기지만 그만큼 불안해 한다. 어떻게 하면 이 살얼음이 깨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혹은 살얼음이 깨져도 문제 없을 만큼 충분한 대처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살얼음 자체를 절대 깨지지 않을 만큼 안전하고 탄탄하게 만들 수 있을까. 요즘의 고민이며 아직까지 나의 해답은 '자본'뿐이다. 자본 외의 답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공유해주길. 다같이 걱정 없이 두 발을 내딛으며 나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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