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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Jun 28. 2021

참아서 끝날 일

요즘들어 수월해진 게 하나 있다. 이게 수월해지면서 삶도 한결 심플해졌다.  바로 '인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순종적으로 변한 것일 수도 있고 워낙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차라리 한 번 꾹 참고 넘어가는 게 여러모로 편했던 경험이 많아서 이렇게 변했을 수도 있다. 그간 내가 소리 높여 쟁취해야 했던 것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어서, 나라를 구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엄중한 일도 아니면서 서로 마음 상해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서 점점 눈 감고 넘어가게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만약 내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마음을 딱 한 번만 참아버리면 모든 건 끝이 난다. 무례한 사람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내가 참아서 끝날 일,  푼 안 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쉬운 문제가 없다.



  인내가 쉬워진 건 오롯이 엄마 덕분이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하루종일 속상했던 일을 풀어내고 싶어 엄마랑 통화를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물으면 엄마는 항상 참으라고 했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 걸 알면서도 매일 전화했다. 참아라, 그냥 넘어가라, 네가 봐준 셈 쳐라. 그런 대답만 듣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떻게 맨날 참으라고만 하냐고, 엄마한테는 어떻게 참는 게 그렇게 쉬우냐고. 엄마가 답했다. 엄마는 어려서부터 하나 둘씩 참다보니 이제는 참는 게 쉽다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진리는, 인생은, 어른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냥 좀 넘어가지. 나이 먹어서 추하게 말이야. 이런 자질구레한 것 때문에 역정내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뿅하고 작은 것에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른처럼 작은 실수 하나쯤은 포용력있게 눈감아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들에게는 마땅히 있어야할 나이테가 없는 것이다.  멋있게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따뜻함과 중후함은 인내하고 또 인내하여야 비로소 한 줄 그어지는 나이테의 증거이다. 인내는 어찌 보면 훗날 추하게 늙지 않기 위해 반드시 수련해야 하는 가치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는 게 한결 쉬워졌다. 정말이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짐승들처럼 톡 건드리기만 해도 서로를 물어 뜯으며 싸우며 살고 싶진 않다. 나이 들어서는 더더욱.



 이제는 주변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물으면 엄마가 그랬듯 나같으면 참을 거라고 대답한다. 참는다고 영원히 참아야하는 건 아니다. 우리 머리가 생각보다 바보여서 참다보면 내가 무엇을 참았는지도 금새 잊힌다. 그러면서 인생이 단순해지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경험을 해보았으면 한다. 인내의 가치를 전파하다니, 어쩐지 한결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나이테가 아주 조금 더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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