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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크킴 Lake Kim Jul 26. 2021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세요

"아가씨! 아가씨!"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줄도 모른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옆 차선에 서있는 차에서 어떤 남자가 운전석 쪽 창문을 내리고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앞뒤로 차가 밀려있는 상황에 나한테 해코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도 조수석 쪽 창문을 내렸다. 내가 창문을 내리자 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자기가 먼저 진입했는데 내가 끼어들었다며 똑바로 운전하라고 소리쳤다. 나라고 운전 하루 이틀 한 사람도 아니고 앞뒤 좌우 다 살피고 끼어들었는데 그 차는 보이지도 않았고 끼어들 만하니까 차선변경도 했던 거였다. 그래도 그냥 사과하고 끝내는 게 깔끔할 것 같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 번 말하고는 창문을 올렸다. 창문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소리를 질렀다.

화가 났다. 내가 진짜 잘못을 했는지는 둘째치고 차 안의 실루엣이 우락부락한 마동석 같은 사람이었어도 그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의문이 들었다. 만약 소리를 질렀다고 치면 과연 마동석 같은 그 사람을 뭐라고 불렀을지도 궁금해졌다. 분명 '아가씨'는 아니었을 거다.

아가씨. 아가씨만큼 젊은 여성들에게 모욕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는 고풍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했던 귀족부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지만 현실 속 많은 상황에서 이 단어는 여성을 어리고 무능하고 약하게 만든다. 언젠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도 깔끔하게 잘하는 한 직장 동료를 "그 아가씨"라고 일컫던 상사를 본 적이 있다. 한 개인의 커리어와 노력을 단숨에 짓밟아버리는 이 단어를 도대체 어쩌면 좋을까. 왜 이 단어를 악용하는 몇몇의 중년 남성을 지칭할 만한 '아가씨'와 같은 지위의 단어는 없는 걸까.

개인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만큼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가 인식하는 세상은 언어로 표출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만큼 폭력적인 행동도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가씨는 잘못됐다. 차라리 '저기요'라고 부르든가 '어이' 하고 성의없이 부르는 게 나을 정도로 잘못됐다. 그러니 아직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누군가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제발 그 단어를 머리 속에서 지워줬으면 좋겠다. 때로는 사라지는 언어만큼 세상이 평등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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