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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킴 Lake Kim
Sep 29. 2021
서운해도 서운하다고 말할 수 없는 때가 있다. 혼자 끙끙 앓다보면 서서히 사그라들겠거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때가 있다. 솔직한 대화가 언제나 정답이 될 수는 없으니까.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게, 목구멍에 머금고 눈물이나 한 방울 흘려보내는 게 나은 상황과 사람과 관계가 있다. 그 경계가 모호하고 저마다의 기준이 달라 우리는 또 갈라서기 마련이지만.
이럴 때마다 나는 양 손으로 너의 머리를 붙잡아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고 싶다. 너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실망했고 낙심했고 서운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네가 제일 밉고 네 앞에서 등 돌리고 싶고 매우 토라져 있는 상태니 이젠 눈치 좀 채고 먼저 알아보고 적당히 위로해달라고 소리치고 싶다.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서운해 해도 되는 걸까. 어디까지 기대해도 되는 걸까. 애초에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서 너는 자꾸만 나를 실망시키는 걸까. 마음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나를 서운하게 하는 사람을 계속 만날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게임을 하는 거야. 다섯 개의 하트 목숨이 사라지면 끝나는 거야. 자, 오 사 삼 이 일. 땡! 마이너스 일. 마이너스 이... 네가 좋아서 목숨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내가 미련해서 그런 거 나도 아니까 악용하지 말아주길.
차라리 선을 넘었으면 속시원히 끝내겠지만 그럴 수 없는 미묘한 침범. 그 때마다 내 안에 쌓이는 무언가. 기나긴 시간을 일컫는 '억겁'이라는 말에서 '겁'은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깃이 학교 운동장만한 바위를 스쳐서 그 바위가 다 닳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겁처럼 스쳐서 깎이는 마음과 쌓이는 응어리가 만나 마음은 괴상하게 비틀어진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순진하게 웃고 있는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