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미 중 하나는 독서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매달 15~20권의 책을 읽어왔으니 취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면 자연스레 독서가 먼저 떠오른다. 독서를 취미로 삼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보통 두 가지 종류로 나뉘는 듯하다. 문학파와 비문학파. 나는 비문학파에 속한다.
사실 나의 독서는 목적이 분명한 독서다. 필요에 의해 실용서를 주로 읽기 때문이다. 책의 주제가 분명하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책들에 끌린다. 그러다 보니 비문학파가 된 것이다. 문제 해결에 대한 마음은 급하고, 그동안 멀리했던 소위 지식에 대한 궁핍이 독서 편식으로 만들었다. (사실 에세이는 꽤나 많이 읽었는데 그것은 문학으로써 수필이라기보다 특정 분야에 한정된 목적 있는 책들이었다. 어느 작가는 모든 실용서를 크든 작든 모두 에세이라고 말했는데 공감하는 부분이다.)
지금껏 나에게 독서가 취미라고 부를 만한 시기가 두 번 정도 있었다. 20대 초반 그리고 꽤나 오랜 공백기를 지나 지금은 두 번째 시기다. 첫 번째 시기에는 문학 쪽에 더 비중을 두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책을 멀리하던 공백기를 지나 찾아온 지금의 두 번째 시기에는 대충 99% 정도 비문학을 읽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실용서만 읽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나의 또 다른 취미인 글쓰기에서 나타난 문제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지만 내 글은 늘 표현력이 부족하고 딱딱하고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갖은 글쓰기 책을 봐도 내 글쓰기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나의 문제는 '비문학파'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이야기를 잘해야 하는데 나는 목적 없는 글쓰기는 한 글자도 적기가 어려웠다. 목적 없는 글쓰기는 그저 일기 또는 일지에 불과했고 어디에 내보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떤 분야에 발을 들이고 싶다면 그 분야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 그래서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들은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어쩜 그렇게 잘 짚어내 한 편의 글을 쓸까 신기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 이상의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들의 일상은 사소해 보이지만 특별한 상황과 인물이 있었고, 내게는 그것이 없었다. 곧 나는 '한가로이 이런 글을 읽느니 차라리 지식을 더 쌓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많은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공통된 조언, 고전을 읽어라라는 것이 계기가 되어 이왕이면 대작에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었다.
'그래, 톨스토이라면 고전 중 고전이고, 교양과 상식의 한 부분으로 읽어볼 만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낯선 이름들과 배경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었다. 훑었다고 하는 게 더 적확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읽고 난 후에는 '드디어 고전을 읽(훑)어냈다!'라는 뿌듯함 보다는 '내가 정말 이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찝찝함이 남았다. 누군가 내게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차라리 유튜브 5분 요약을 다시 찾아봐야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로 '나도 소설이라는 것을 읽을 마음의 준비는 되었다.'라는 점에서는 꽤나 좋은 시도였다. 곧 소설 읽기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 또는 이유가 생겨났고, 갖은 고전 또는 유명 소설책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단' 들여놓고 보면 '어느새' 읽게 되는 것이 '책'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어느새 몰입하는 것이 '소설'이다. 나는 문득 소설에 몰입하고 있는 나의 낯선, 하지만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소설에 대한 감정을 알아챘다.
소설이 주는 이득이란 낯선 이들의 삶을 들여볼 수 있다는 것이라 한다. 소설 읽기가 당장에 쓸모없는 하나의 유희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분명히 꺼내지게 되는 그러한 인생의 정보들이라고.
소설 읽기는 비문학 독서와 정반대의 성격이다. 비문학 독서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버너 같은 것이다. 필요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에 비하면 소설 읽기는 햇볕 같은 것이다. 잔잔히 쐐다보면 시커멓게 그을려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문학 역시 계발서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로소 독서라는 곳에 양발을 들인 느낌이다. 아직 균형추는 한참 기울어져 있지만 그래서 새로운 설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