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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koon Nov 18. 202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익숙해지기 오래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p.73)
"놀라운 일이야, 나도 막 똑같은 이야기를 하려던 참인데 / 생각을 하던 중인데 /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p.74)


1. 내가 잊은 것인지 정말 그런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람에게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만나자마자 편안하거나, 나와 비슷하다거나 했던 사람들은 있었다.


 편안함과 비슷함을 느끼는 것은 다르다. 나와 비슷한 성격이라거나 어떤 구석이 닮았다고 해도 그것이 곧 호감이나 심리적 편안함에 다다른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 너무 잘 똑같다는 생각은 오히려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경험이란 것은 아니다. 단지 묘하다는 거다.


 미러링 효과라는 심리 행동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이나 가까운 사람을 따라 하게 된다는 심리적 용어인데, 우리는 의외로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동시에 팔짱을 낀다거나, 생각을 말한다거나, 어느 지역의 같은 식당을 다녀왔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정말 서로에 대한 어떤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성숙한 사랑의 이야기에서는 절대 첫눈에 반하는 일이 없다. ... 그러나 왜곡된 사랑의 현실에서는 아는 것이 늘어날 경우, 그것은 유인이 아니라 장애가 될 수도 있다 - 유토피아가 현실과 위험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p.75)


2. 사랑에도 수준이라는 게 있을까? 성숙한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아마도 아가페만이 궁극의 성숙한 사랑일 것이다. 조건 없는 사랑.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랑을 쉽게 마주하기 어렵다. 사실 부모의 사랑조차 피로 이어졌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혹은 연민이나 다양한 감정으로 이루어진 아가페적인 사랑도 그 감정이라는 조건 하에 존재한다. 하지만 연인 사이에서 순수한 아가페적 사랑은 존재하기 어렵다. 인간적인 사랑에는 항상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성숙한 사랑의 절정에는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아가페적이다.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에도, 아름다운 모습에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단점을 부끄러워하거나 슬퍼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습에도 질투나 시기 없이 여전히 그렇다. 심지어 자기 혐오 조차 자기 사랑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혐오가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3. 타인에 대한 사랑은 조건이 필요하지면 어쨌든 성숙한 사랑의 모습과 닮을 수는 있다. 그러한 형태는 상대방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알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


 반대로 처음부터 활활 타오르는 정열적인 사랑은 자칫 왜곡되기 쉽다.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상상 속의 대상은 현실의 대상으로 치환될수록 사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백지에서 점점 더해가는 사랑은 끝을 알기 어렵지만, 정점에서 시작한 사랑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평생 속이기는 어렵다. 결국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기대와 다름을 깨닫게 된다.


 흔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여행지에서 우연히 시작한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는 운명이 아닌 그저 왜곡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곧 클로이를 알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이 훨씬 쉽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p.77)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p.78)


4. 꽤 흔한 이별의 사유는 성격차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성격차이가 전부인 듯하다. 하나의 궁금증은 성격차로 헤어진 커플의 만남 초반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일까?


 상대에 대해 많이 알게 돼 문제가 된 것이라면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에 대한 지식의 문제다.


5. 앞의 이유로 우리가 실제로 만나기 어려운 그런 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아주 쉽다. 연예인이나 어떤 캐릭터, 또는 가상의 이상형. 그런 존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쉽게 빼앗긴다.


위협적인 차이는 중요한 점[국적, 성, 계급, 직업]에서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의견이라는 사소한 점에서 쌓여갔다. (p.80)


6. 커플에 있어서 위험요소는 무얼까? 얼마 전 보았던 연애 프로에는 종교, 가족 간의 문화 등으로 이별을 겪은 인물들이 나왔었다. 하지만 그들이 겪었던 문제가 정말 그것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런 큰 형태의 문제들은 초반에 다 걸러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청소의 정도나 대화의 과정과 같은 생활 방식의 사소한 차이가 켜켜이 쌓여 문제를 만든다. (치약 짜는 방식의 차이로부터 시작한 부부싸움이 끝내 이혼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마라톤 선수를 경주에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운동화 속 작은 모래 알갱일 수 있다. 빈번하고 사소할수록 우리에겐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부모가 클로이를 보는 것이 내가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p.83)


7. 사람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타고난 성품과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꺼내 사용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는 경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이나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대방의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 모습은 자신이 알던 상대와 다른 모습이라 해도 모든 것은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본성 중 하나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런 무의식적인 자아들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드러나게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에게 불친절하지만 유독 나에게만 친절하다면 그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다시 마주할 일 없는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이 본성일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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