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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효한 안녕들 : 쏟아진 탄산수와 흘러내린 나

by lala

출근길, 지하철에서 막 빠져나올 때마다 속마음이 입술 밖으로 삐져나왔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어” 회사에 큰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름 있는 기업이었고, 꼬박꼬박 귀여운 월급이 들어왔으며, 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충분히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엔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목소리가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괜찮은 어른’의 조건을 충족했지만 어딘가 어긋난 삶을 살고 있다는 본능적인 확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본의 아니라 타인을 들여다보게 되는 장소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피하고 싶어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하라”라고 조언했지만, 내 레이더는 언제나 과민하게 작동했고 타인의 불안을 고스란히 감지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다들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불안에 갇혀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늘 휴대폰을 쥐고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항공권을 검색하며 여행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반복되는 연애의 소란 속에서 사귀고 헤어지기를 무한 반복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몇 시간 동안 내달리며 땀을 쏟아냈다.


처음엔 이것이 그저 취향이자 개별적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다채롭고도 일관되게 흐르는 불안은, 어쩌면 회사를 매개로 생겨난 건 아닐까? 상사한테 질책을 들은 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붙잡고 쇼핑에 몰두하는 손가락, 무기력한 일상에 질려 발작적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 일터가 채워주지 못하는 공허함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채워보려 해도 마음 같지 않은 고착 상태. 그 모든 현상은 마치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의 몸부림처럼 보였다. ‘회사 밖’으로 탈출할 수 없기에 몸이든 마음이든 다른 곳으로 탈출하려 애쓰는 것이다.


나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고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나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타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 관심을 두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계속 억압하고 본능을 누르며 이것을 벌충하기 위해 타인의 욕망으로 관심을 돌린 것이다. 필라테스, 줌바, 헬스, 댄스, 등산, 요가 등 활동성 있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기도 하고 독서, 합평, 글쓰기 강좌를 들으며 지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면의 허기는 계속 심해져 갔다. 이쯤 되니 몸과 마음도 소진되어 진이 빠지는데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에 빠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 내 마음은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튀어나오려는 감정들을 억누르기 위해 다소 충동적으로 무언가에 매달렸고 또 너무 쉽게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이 되자, 이 모든 초조함과 허기는 지금 내 시간을 가장 많이 점유하고 있는 것, 즉 회사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론이었다. 계속 허기지게 하는 진원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TELUS Health의 2025년 정신건강 지수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47%가 우울감을, 43%가 불안감을 경험했다고 한다. 놀라운 수치지만, 나는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다. 아침이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고, 일을 맡으면 야무지게 해냈으며, 동료들이 나를 ‘털털하다’고 말할 만큼 명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탄산수를 바닥에 쏟은 날,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탄산수는 큰 행사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 가방 안에서 꺼낸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성실하게 준비했던 행사는 잘 마무리가 되었고 모두 수고했다며 나를 칭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하철로 가는 내내 나는 극심한 공허함을 느꼈다. 머릿속은 멍했고, 발걸음은 힘이 없었다. 나는 이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다. 풀리지 않는 허무의 실타래를 하나로 단정히 모아 빗질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더 엉켜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 안의 모든 내용물은 빠져나가고, 피부 껍질만 남겨진 듯한 공허였다. 나는 가방에서 탄산수를 꺼냈다. 그리고 병뚜껑을 여는 순간,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휴지를 꺼냈고, 옆에 있던 한 할머니가 함께 닦아주셨다. 별일 아닌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바닥을 닦으며 조용히 울고 있었다. 마치 압축된 탄산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내 안에 잠복되어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는 기분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가 욕을 할 때면, 그 대상이 내가 아님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렸고, 언성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매번 나 자신을 의심했다. “혹시 내가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닐까?” “내가 예민한 걸까?” 스스로의 자질을 부정하고, 자꾸만 더 노력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왜 그렇게까지 남고 싶었는지, 그 소속감을 얻어서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흐릿했다. 이건 부적절한 감정이라고 나를 다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는 냉소뿐이었다.




쏟아진 건 탄산수였지만, 흘러내린 건 나였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육체는 세상의 중심이다”라는 말을 했다. 몸은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정까지 먼저 알아차린다. 억눌러 둔 슬픔, 말로 꺼내지 못한 불안, 감지조차 못 한 피로들. 나는 늘 뒤늦게 깨닫는다. 몸에서 비명을 지르고 나서야 늘 허겁지겁 달려온 내 길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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