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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기 위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by lala

어렸을 적, 나는 늘 성적을 잘 받고 싶었다. 이건 열심히 공부한 만큼의 결과를 얻고 싶어서도, 경쟁심이 강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바랐던 이유는 나를 믿어주는 어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링거를 맞으면서도 보충 수업을 해주셨던 학원 선생님, 힘들게 벌어 학원비를 대주셨던 부모님, 등수를 높이길 기대하셨던 학교 선생님. 나는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때 내 나이는 열 살이었다. 열 살짜리 아이가 그렇게까지 인정을 갈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성적이 나쁘더라도, 그들은 나를 여전히 아껴주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결과로 증명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망령 같은 믿음이 그때부터 나를 붙잡았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후회하는 일은 너를 낳은 거야.” 엄마가 초등학생이던 내게 했던 말이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야 했던 게 힘들어서 한 말인지 아니면 내가 뭔가를 크게 잘못해서 홧김에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건, 나는 내 방에서 몇 시간이고 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방 안으로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와 신세 한탄을 들으며, 나는 스케치북을 꺼내 바비 인형을 그렸다.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과는 다르게 바비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내가 그린 바비들이 마치 ‘괜찮아, 곧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종이 위에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곳은 유일한 피난처였다.


아이에게 엄마는 ‘신’이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줬고 양육해 주는 존재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신이 어느 날 “너를 낳은 걸 후회해”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들까. ‘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이제라도 회수해 주시겠어요? 나도 태어나는 걸 원했던 적은 없어서요.’라고 말을 할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보여드릴게요. 당신이 나를 만든 게 실수가 아니었다는 걸 꼭 보여드릴게요!’ 나는 간절했다. 그 간절함은 나의 성적표 속 숫자들에 담겨 있었다. 1등이라는 숫자를 본 엄마가 흐뭇하게 웃는 걸 보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행이다. 나는 버림받지 않을 거야.’ 사실 엄마는 단 한 번도 “일등을 해야 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도 그중의 하나였다. ‘사랑’은 내게 조건부로 느껴졌고, 나는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나는 그 사건을 오랫동안 ‘별일 아닌 것’으로 기억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저 그날 엄마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었거나,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해서 화가 났던 거라고 나름대로 합리화했다. 모든 엄마는 실수할 수 있고, 내 엄마도 그런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물론 그런 일이 반복되어 방 안에서 몇 시간씩 울어야 했다는 건 충분히 슬픈 일인데도 말이다.


성인이 된 후, 나는 그때 이야기를 무심코 친구에게 꺼낸 적이 있다. 예상과 달리 친구는 놀란 눈으로 내게 말했다. “너 괜찮아? 어떻게 그걸 견뎠어?” 그저 지나가는 말로 했던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되받아치는 친구가 내겐 상처였다. 나는 갑자기 불편해졌다. 내가 무심코 지나치듯 말했던 일을 친구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황한 나는 열심히 엄마의 헌신을 설명했다. 친구는 조용히 듣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건...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야?” 그 말은 나를 또 한 번 멍하게 만들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겨온 기억들이 알고 보니 모든 엄마가 ‘기본’으로 하는 일이었다는 것.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헌신처럼 보이는 사례를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너 말하는 건 다 돈이랑 관련된 거네. 보통 헌신이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내 편이 되어줬다거나 그런 걸 말하잖아.”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엄마는 내 편을 들어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친구와 싸우고 돌아오면,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오죽하면 그 친구가 그렇게 했겠니. 너 지금 너무 감정적으로 굴고 있어. 방에 들어가서 다시 생각해 봐. 분명 네가 뭔가를 잘못했으니까 친구도 그런 식으로 행동한 거야.”


엄마의 말은 늘 같았다. 내 감정은 늘 ‘과잉’이었고, 내 말은 ‘덜 객관적’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엄마를 ‘메타인지를 키워준 어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게 믿었으니까. 화가 났다는 감정을 다시 생각했고, 어떻게든 내 잘못을 찾아내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대체 어떤 ‘성찰’을 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조용히 재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성찰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 몸에 배게 된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면 틀렸을지도 몰라.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그렇게 자주 내 감정을 미뤄두었고, 그 감정은 결국 말이 되지 못한 채 내 안에 쌓여갔다.


어렸을 적의 양육에 어느 정도의 무게를 두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아주 오랫동안 사랑스러워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어쩌면 그 노력 속에는 이미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지은 마음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의탁해 버리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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