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마음의 깃발

당신의 깃발은 바람에 펄럭입니까?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이 노래를 나는 언제 배웠던가. 아동문학가 강소천(1915~1963) 선생의 동시에 곡을 붙인 노래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군사정권시절 국기 게양식을 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기도 했다.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매일 국기게양식 때마다 외운 문장이다.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2007년 수정한 국기에 대한 맹세다.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가는 현대 대한민국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으로 ‘조국과 민족’ 부분을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변경했고, 개인의 희생과 충성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는 부분을 삭제했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깃발이다. 유엔본부 건물 앞의 각 나라 깃발이 도열한 채 펄럭이는 프레임 속 태극기의 모습은 혈육처럼, 꿈처럼, 희망처럼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바람이 세찰수록 깃발은 더욱 흩날리는 갈기처럼 힘차다.


  옛날에 이런 유머가 있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전쟁을 할 때였다. 나폴레옹이 ‘저산을 향해 가자!’고 외친다. 프랑스 보병들은 굶주림과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저산에 올라가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이산이 아닌가벼.’ 하고 말한다. 지친 보병들이 허탈해하자 나폴레옹이 다시 ‘저쪽 산을 향해 돌진!’하고 외친다. 눈보라와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프랑스 보병들은 그래도 한갓 희망을 가지고 나폴레옹의 깃발을 따라 저쪽 산으로 죽기 살기로 돌격한다. 그러나 저쪽 산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이쪽 산도 아닌가벼.’ 했다는 우스갯소리다. 그 때는 그저 낙천적인 성향의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나폴레옹이 웃겼다.


  요즘 생각하니 나폴레옹에게 그 순간 ‘마음의 깃발’이 없었음을 풍자한 게 아닌가싶다. 리더는 분명한 ‘마음의 깃발’이 있어야 한다. 삼국지를 보면 어떤 부대든 깃발이 있다. 제갈공명은 ‘제갈(諸葛)’이라고 쓴 깃발을 기수가 들고 있고, 조조는 ‘조(曹)’자를 쓴 깃발을 들고 있고, 사마의는 ‘사마(司馬)’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다. 그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은 물론이고, 리더에겐 철학이든, 꿈이든 , 마음이든, 초심이든 분명한 자신의 깃발이 있어야 한다. 그 깃발이 없으면 방향을 잃어버린다.


  여고시절, 교련(敎鍊, 학생군사훈련) 시간이 있었다.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주로 응급처치와 붕대법과 간호법 등을 배웠다. 또한 그 시간에는 사열도 받았다. 연대장의 구령에 맞춰 열병과 분열을 통해 정신을 무장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키가 큰 나는 기수였다. 교기(敎旗)를 허리에 찬 벨트에 꽂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 자칫 내가 방향을 잘 못 잡으면 1.200명 전교생이 ‘저쪽 산’으로 가게 된다.

  - 전교생 좌향좌!

  연대장이 소리친다. 전교생은 왼쪽으로 돌아선다.

  - 앞으로 가!

  속으로 왼발, 왼발이라는 구령을 세며 전교생은 앞으로 나아간다. 운동장이 좁았기 때문에 기수인 나는 제자리걸음으로 돌았다. 나를 중심으로 전교생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크게 운동장을 돌았다. 땡볕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열식은 계속 되었고, 여기저기서 픽픽 쓰러지는 아이도 있었다. 나의 열일곱 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깃대를 잡고 있으면 바람이 세찰수록 깃발이 멋지게 펄럭였고,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가야 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북경에 갔을 때였다. 천안문에서 해질 녁 오성기 하강식을 본 적이 있다. 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열병식을 하듯 걸어 나와 오성기가 천천히 내려올 때까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풍경이었다. 여고시절 기수를 해서 그런지 펄럭이는 깃발을 보면 언제나 잠시 눈길을 준다. 어떤 깃발이든 깃발은 외롭고 고독하게 허공에서 펄럭인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더욱 구김 없이 빛난다. 바람의 저항이 없다면 깃발은 금세 후줄근하니 볼품이 없어지고 만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잠시 일별할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의 깃발을 돌아본다. 내 마음의 깃발은 아직도 펄럭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 마음의 깃발은 무엇인가. 도대체 나는, 내 마음의 깃발을 언제 처음으로 세웠는가.


  어릴 땐 그저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이 세상이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이 점점 황폐화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가 내 잣대에 맞지 않는다고 분노하고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시절 어리석게도 문학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맹신했다. 그러나 문학은 사회를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적의를 드러내던 발톱을 감출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픈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구도자처럼 문장을 찾아 떠나는 순례의 길을 가고 있다.


  가끔 길을 잃고 우왕좌왕, 우물쭈물, 전전긍긍하며 시류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떠밀려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글을 한 줄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어느 날 삶이 지루하고, 시들하고, 불안했다. 그러다 어느 재야 논객이 왜 이렇게 욕을 먹으며 바른 소리를 하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먹물의 의무’라고 답했다. 나는 그 순간 보이지 않는 투명 벽에 이마를 세게 찧은 느낌이었다.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감히 말하건대, 펜으로 세상을 구원해 보겠다는 가당찮은 꿈을 꾸는 자는 ‘먹물과’에 속한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먹물의 의무를 저버리는 직무유기를 하였는가. 먹물의 의무는 자신의 깃발을 똑바로 드는 일이다. 


  내 깃발은 비에 젖은 생쥐처럼 후줄근했고,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왜 늘 깨어 있어야하는지, 왜 초심을 잃지 않아야하는지 각성한다. 자신의 깃발을 방치하면 누구든 그렇다. 정치가는 왜 자신이 정치가가 되려 했는지, 의사는 왜 자신이 의사가 되려 했는지, 판검사는 왜 자신이 판검사가 되려 했는지, 작가는 왜 펜을 들었는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 초심을 잊어버리면 정치가는 독재자가 되고, 의사는 돈만 버는 장돌뱅이가 되고, 판검사는 권력남용으로 양아치가 되고, 작가는 저급한 창녀처럼 여기저기 권력에 아첨하는 글을 쓰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깃발을 펄럭이며 세상을 건너가야 한다. 그 깃발을 잃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돈과 권력과 사치와 허영과 쾌락을 쫒아 방종하게 된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는 공허와 우울과 허무와 고독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당신의 깃발은 바람에 펄럭입니까? 제 깃발은 아직도 바람에 펄럭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스톡홀름 증후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