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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01. 2021

퇴사하는 이에게 해야 할말,
입사하는 이에게 해줘야할말

선배와 언니 사이

퇴사하는 이에게 해야 할 말


내가 여러 번의 이직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이렇다 하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공무원 의원면직을 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실망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듣게 되면서 그 말이 가슴에 콕 와서 박혔다. 물론 나의 의원면직 과정과 배경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남편은 눈치 없이 내가 힘들었다면서 편을 들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K-장녀 인 내가 부모님이 실망했다는 말에 주눅이 들다가도 나는 막내아들의 탄생으로 내 어깨의 무게를 내려 던지며 '프리덤'을 외쳤던바가 있던바. 그래서 나는 이내 곧 


'엄마는 그냥 그럴 수도 있지. 실망할 수도 있지.'


라고 하게 되었다. 엄마가 실망한다고 해서 내가 억지로 공무원에 붙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나에게 중요한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그럴 수도 있지'가 되고,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말은 흘려듣지 못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나쁜 습관이다. (반대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퇴사를 축하해!" 


내가 20대 처음 회사를 때려치웠을 때 나는 같이 학회를 하던 선배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나의 첫 퇴사가 무서웠다. 잘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을 때였다. 그때는 그 어떤 일에도 확신이 잘 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한잔 마시자고 할 참이었는데, 선배는 나에게 꽃다발을 사주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퇴사를 했다고 알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뭐해먹고 살 거냐'

'이직할 곳은 정해놓고 그만둔 거냐'

'방세는 어떻게 내냐'


등등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이어지고는 했다. 그런데, 퇴사를 했다고 꽃다발을 사주는 선배에게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정말 신나는 목소리로 축하를 해줬다. 나는 처음으로 퇴사했다고 축하를 받았고, 처음으로 여자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나중에 꼭 회사를 때려치우면 꽃집을 하겠다던 선배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무계획성 퇴사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조차, 마음 깊숙한 곳에는 버티지 못하고 나온 스스로에게 매몰차게 생각했던 작은 '불티'가 남아있었다. 그 불티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발화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발화를 스스로를 불태워버리곤 했다.  


내 것이 아닌 감정은 주인에게 돌려주기 


https://www.youtube.com/watch?v=T2V8QYx83uw


오은영 박사가 '금쪽 상담소'에 나와서 한말이 있다. 

당신의 감정이 아닌 것들로 당신마저 당신을 싫어하지 않을 것


나중에 듣기로 선배도 다른 선배에게 퇴사한 날 꽃다발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아 나에게 해주었다고 했다. 나 또한 나에게 어느 날 후배가 퇴사를 했다고 알려오면 꼭 축하해주고 꽃다발도 사줘야지 생각했다. 


입사하는 이에게 해줘야 할 말


이직을 하고 첫 월급을 타고나서 제일 먼저 만난 외부인은 친한 동생이었다. 

같은 신문사에서 일을 했고, 나보다 1년 후배였다. 유달리 학교에서 겉도는 느낌이 있었고, 동기들이랑도 나쁘게 지내지 않는데 어쩐지 마음 붙일 곳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표정이 잘 읽혔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학교를 자퇴하고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고 했다. 내가 자꾸 말을 붙이고 후배의 친구들을 같이 밥을 사주고 하는 덕에 점점 적응을 해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친해지면 '언니'라고 했고 다음날이 되면 다시 '선배'라고 불렀다.


선배와 언니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졸업을 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언니로 통일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오랜 시간 동안 다니던 준공무원의 재단을 나오고 나서 긴 시간 동안 짧게 짧게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오랫동안 일을 쉬고, 잠깐 일하는 동안에도 몸이 안 좋아 수술을 하면서 다시 일을 쉬게 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그녀가 학보사에서 경험을 인정받아 생전 처음 보도자료를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치판의 선거와도 연결이 되는 일이라 무척이나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내가 뒤늦게 좋아하게 된 곱창집에서 곱창을 씹으면서 그녀의 고민을 들었다. 곱창을 먹고 2차로 넘어간 곳에서도 그녀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잘할 수 있을까?" 


그녀의 고민은 일맥상통했다. 연봉도 높였고,  상사는 본인을 믿어준다고 했다. 면접을 볼 때 어떤 일인지 들었는데 감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사무관 출신이라고 했다. 국회의 경험이 없는 건 본인뿐 아닐까 걱정을 했다. 


2차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 횡단보도 빨간불 앞에서 서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못해도 괜찮아" 


"내가 들어도 좀 어려운 일인 것 같긴 해. 예민한 일이기도 하고. 근데 그 사람이 너를 직접 보고 뽑았다면, 너의 우직함을 보고 뽑은 걸 꺼야. 넌 웬만하면 그만 안 두니까. 아파도 수술하면서도 회사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사무관이었면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겠니. 그 짬밥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사람을 잘 본다는 얘기야. 너한테서 그런 면을  봤으니까 연봉도 올려주고 널 뽑았을 거야. 그리고 네가 그쪽 경험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뽑았다면 처음부터 너에게 무리하게 큰일을 주지 않을 거야. 본인이 다시 검수하거나 검수하는 선임을 둘 거야. 그냥 막 해도 돼. 


그리고 관리자들은 그런 거 관리하고 책임지라고 더 돈 많이 받는 거야.  


잘못되는 거 걱정은 우리 같은 조무래기가 하는 게 아니야. 

관리자들이 누가 사고 칠까 봐 걱정해야 하는 값으로 일은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받는 거야. 


네가 잘 못할 성격도 아니긴 한데, 그리고 좀 잘 못하면 어떠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고 좀 치면 어때. 

횡령 같은 사건만 안치면 돼. 그런 것만 아니면 그 사람들한테는 사고도 아니야. 형사사건은 안된다~"


내가 말하면서도 내가 취했나. 무슨 헛소리를 지금 애한테 하는 건가 싶었다. 나도 꼰대가 된 건가 싶었다. 겨우 한 살 차이에 몇 년 조금 더 일했다고 이런 개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졌다. 

후배는 나에게 팔짱을 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필요했어요. 언니" 


우리는 신나게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깔깔대며 횡단보도를 뛰었다. 취한 게 분명했다. 나는 내가 퇴사하고 꽃다발을 받았던 날처럼 기분이 좋았다.


가끔은 "잘할 수 있어!" 보다
"잘 못해도 괜찮아"가 더 용기가 되어주는 날도 있다. 


나도 새롭게 일을 시작했고, 그녀도 일을 새롭게 시작했다. 나에게 퇴사 꽃다발을 주었던 선배는 소원하던 꽃집을 차렸다. 


끝없는 밤은 없다.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다. 

언젠가는 당신도 그 긴긴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 할 것이다. 

해뜨기 전이 제일, 춥다는 말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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