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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Oct 29. 2021

폐지 줍는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왔다

낯선 이의 안부가 궁금할 때

그 할아버지는 잘 계실까? 


본가에 한 달에 한 번씩 집으로 폐지를 가지러 오시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처음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이 많은 우리 엄마의 성격으로 미루어 분리수거장을 뒤지는 할아버지에게 집에 모아둔 신문을 주겠다고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아빠와 엄마는 매일신문을 보셨다. 한동안 신문을 보는 것이 수능에 도움이 된다며 2종류의 신문을 받아보시기도 했다. 덩달아 나도 취미에 없는 신문 사설 읽기를 함께 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신문을 보는 집이 사라졌지만 그때에는 신문 보는 집이 많이 있었다. 더구나 내가 고등학생이라 다 푼 문제집을 버릴 때가 많았다.   


그건 추측에 불과 하지만 바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할아버지와 마주칠 일이 많지 않았다. 그 많은 집 중에 우리 집에 폐지를 받아가는 할아버지를 딱 한번 나는 보았던 적이 있다.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 혼자 집에 있는데 할아버지가 방문한 일이 발생했다. 엄마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아파트 밑으로 내려갔고, 그 짧은 사이에 안타까운 타이밍으로 할아버지가 왔다. 


아무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엄마의 신신당부를 들은 막내는 철저하게 말을 잘 들을 때였다. 나는 열쇠가 있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할 필요가 없었고,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의 찰나에 아뿔싸, 할아버지가 방문을 한 것이었다. 


"얘야.. 오늘 신문을 꼭 좀 받아가야 해"

"어.. 그런데.. 할아버지.. 엄마가 아무도 절대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요"

"그럼, 여기 계단 앞에서 기다릴게"


할아버지는 엄마가 신문을 주기로 했다면서 꼭 좀 신문을 달라고 했다.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은 막내는 어른이 있을 때 나중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오기 힘들다며 찬 계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심적 갈등을 심하게 겪은 막내는 결국 머리를 굴려서 문을 열지 않으면서, 할아버지를 기다리지 않게 하는 절충안을 생각해냈다. 


예전 집에는 대문 구석에 구멍이 하나씩 있었다. 우유를 넣는 구멍이었다. 막내는 우유 넣는 구멍으로 신문 한 장씩 내주었고 할아버지는 신문을 한 장씩 받았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엄마가 집에 왔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조구려 앉아 구멍을 보고 있던 막내가 있었다고 했다. 


얼마 후 현관문의 우유 넣는 구멍으로도 도둑이 침입 하는 일이 이루어지는 통에 현관문의 우유 넣는 구멍은 집 앞의 우유 넣는 봉투로 바뀌었다. 우유 넣는 구멍도 막혔다. 


막내는 벌써 대학생이 되었고, 군대를 갔다. 나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주말에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신문과 문제집을 손수레에 싣고서 뿌듯해하는 표정이셨다. 나는 아직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할아버지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세상이 험해지고 사건사고가 많아지는 날이면, 그날의 잠깐이, 잠시 10분의 시간이지만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건사고가 나는 건 순간의 일이라 아찔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다면? 지금 생각해보면 가슴이 철렁할 일이다. 


그리고 나는 집을 떠나 대학을 오고 할아버지의 존재를 잊었다.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는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독하던 신문을 끊었다. 아빠는 핸드폰으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오지 않아서, 신문을 끊은 것인지 신문을 끊어서 할아버지가 오지 않았던 것인지. 이제 핸드폰으로 신문을 볼 수 있어서 신문을 끊자 한 것인지. 무엇이 먼저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시에 일어났다. 급변하는 시대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관문에 있는 우유 구멍은 다 사라졌다. 

우유를 먹는 사람들도, 신문을 보는 사람들도 많이 사라졌다. 


다 막아서 안전해졌지만, 초등학생이 엄마와의 약속은 지키면서 할아버지가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우유 넣는 구멍으로 신문을 내어주고 한 장씩 받고 있던 때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처 입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 막아버리지 말고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뚫려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텐데. 상처가 곪고 터지기보다 조그마한 구멍으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구멍으로 마음에 도둑이 들지도 모른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 어쩌면, 할아버지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지도 모른다. 초등학생이던 동생은 벌써 군대를 갔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꽉 막힌 우유통을 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때 집에 신문 가지러 오던 할아버지 기억나?"


할아버지는 신문 외에는 그 어떤 도움도 손사래 치며 받아가지 않으셨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아빠 엄마를 거쳐 나까지 보고 난 신문이 할아버지에게 가서 조금은 따뜻한 온기가 되었기를. 그래서 다 푼 문제집은 무겁지만 꼭 집에 들고 와서 버렸던 내 학창 시절의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 

 

어쩐지 낯선 이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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