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La Nov 03. 2021

길 한가운데서 신발 끈이 떨어졌다

떨어져 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툭, 신발 끈이 떨어졌다


지난 여름날 내내 나를 데려다주던 신발의 끈이 툭하고 끊어져버렸다. 더 이상 풀릴 신발 끈이 없는 그런 신발을 신었는데, 툭하고 신발의 끈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나는 조금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고 떨어져 나가는 신발의 끈을 보며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죽음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쉽게 나가떨어져 버릴 생명 앞에서 갑작스럽게 맞이하는 이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몇 달을 더 끈 떨어진 신발을 신고 걷다가 떨어져 나가는 끈을 밟고 넘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신발을 벗었다.


동물농장 아롱이 아순이 편에서 떠나간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며칠 전, 오래 키운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밥을 먹다가 펑펑 울던 회사 동료의 울음을 생각한다.

철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동창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처음 가본 장례식장을 떠올린다.

불 꺼진 부엌에서 울던 엄마를 생각한다.  


친구의 남편은 친구가 결혼하기 전부터 키우던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정을 주면 떠나갈 때 힘들까 봐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고3 때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3개월 간격으로 모두 돌아가셨다. 엄마는 고3인 내가 마음이 동요되어 시험을 망칠까 봐 장례식장에서 하루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엄마는 며칠이나 불 꺼진 부엌 바닥에 앉아 울곤 했다.


나는 이상하게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동창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처음 가본 장례식장은 침울했다. 우리는 친구인 상주를 붙잡고 울지도 못하고 혼나는 사람들처럼 시무룩해했다.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때 어느 분이 말했다. 


"장례식장은 너무 조용하면 안 된다"


그 말이 주문을 외운 듯 마법처럼, 우리를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깔깔 되던 여고생으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나는 나중이 되어서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다. 너무 조용한 것보다는 시끌벅적한 장례식장이 보내드리는 분의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하루 종일 굶었을 친구에게 밥이라도 먹이려고 불러서 육개장을 뜨려는데, 고모가 친구의 등을 치면서 불렀다. 장례식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상주해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 장례식장에 머물러 주는 일 밖에 없었다.  


한동안 부친상을 당한후 혈혈단신이 된 그녀가 걱정되어 집에 며칠간 찾아갔다. 놀러를 갔다고 해야 맞는 말일것이다.  어머니가 어릴적 돌아가셔서, 부친상 이후에 집에 어른은 없었다. 친구는 동생을 데리고 살아야하는 가장이 되었다. 동생에게 잔소리를 하는 친구는 제법 어른같았다. 하지만 철없는 나와 다르게 반장 친구는 반찬을 싸와서 친구 냉장고를 채워주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의 철없음을 반성했다. 그 후 소풍날이면 김밥을 2개 싸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해 김밥을 싸와서 같이 먹고는 했다. 지금이었다면, 고민했을 일도 그때는 그저 친구가 굶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자 급식실이 생기고,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점점 멀어졌다. 


끈 떨어진. 

끈 떨어진 갓 신세.
끈 떨어진 뒤웅박.
끈 떨어진 망석중이


이 모든 말들에는 공통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어져 외롭고 불안(불쌍)하게 된 처지라는 뜻이 있다. 끈이라는 것이 기댈 곳을 나타내고 있어서 끈이 떨어져 버리고 기댈 곳이 없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갑자기 예기치 못하게 끊어져 나간 신발을 바라본다. 


끈 떨어진 신발 하나쯤인데도

끈 떨어진 신발 하나 때문에

마음의 끈이 툭. 하고 떨어져 버리는 날도 있다.






1. 물건을 매거나 꿰거나 하는 데 쓰는 가늘고 긴 물건. 노, 줄, 실, 헝겊 오리, 가죽 오리 따위가 있다. 

2. 물건에 붙어서 잡아매거나 손잡이로 쓰는 물건.  

3. 벌이를 할 수 있는 방도.                                              

4. 의지할 만한 힘이나 연줄.           

5. 인연이나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마전, 결혼사진을 돌아보다가 부친상을 당했던 친구가 결혼식에 만삭의 몸으로 온것을 알았다. 청첩장을 전하며 만삭인 그녀에게 안와도 된다고, 왔다가 애 나오면 어쩌냐고 했던 기억이 났다. 


"언제가 예정일이야?"

"다음달이야"

"야 결혼식에 오지마. 왔다가 애 나올라. 너는 안와도 내가 온걸로 친다"

"남편한테 태워달라하면 돼" 

"안돼 안돼 주말이라 차밀려. 애 낳고 나중에 보자. 청첩장 주는김에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 온거야"


결혼식날은 정신이 없고 신부대기실에 들리지 않아서 온지 몰랐는데, 단체 사진에는 맨 앞줄에 있었다. 여름으로 가는 초입이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여름에 출산을 했다. 그녀도그녀의 딸도 여름에 태어났다. 


부친상 장례식장에 갔기 때문일수도 있고, 내가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만삭의 몸으로 식장에 온 그녀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 후로 멀리 이사를 가버려 자주 볼 수 없지만, 책도 보내주고 했었다. 


가끔은 갑자기 끊어지는 끈처럼 인연의 끈이 툭하고 끊어지기도 하지만, 이별의 끈이 다른 인연으 끈으로 단단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이별이  또 다른 만남의 끈으로 이어지게 한 것을 보면 사람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실(끈)이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하는 이에게 해야 할말, 입사하는 이에게 해줘야할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