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관상을 보는 나이

고집이 말도 못 하게 있는 관상을 가진 여자

by LaLa


내가 처음 남편을 남자 친구라고 엄마에게 사진을 보여줬을 때 우리 엄마는 처음으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비췄다.


"우야노. 니도 고집이 있는데 야도 고집이 만만치 않게 있네"


얼굴에 고집이 있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고집이 '덕지덕지' 붙어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관상쟁이는 아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심지어 모태 신앙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사람의 관상을 봤다. (내 남자 친구에 관해서는)


눈이 맑다, 눈빛이 선하다. 는 등

주로 눈에 관한 인상을 얘기하고, 사람에게서 장점을 먼저 보는 엄마가 제일 처음 한 말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관상'이라는 것 따위 보지 않는 20대였기 때문에 그냥 넘겨들었다.


엄마의 관상 해석대로 남편은 한 고집했다. 문제는 엄마의 해석대로 나 또한 고집쟁이여서, 우리는 숱하게 싸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혼을 했다. 30대 되자마자 나는 늦은 결혼을, 남편은 20대 마지막의 이른 결혼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살아온 삶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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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동상이몽>에서 이지혜와 남편이 노인 분장을 해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나왔었다. 주로 나이 든 미래 사진을 찍는 사람 중에는 가족 중 누가 많이 아파서 함께 할 수 없어서 미리 찍어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지혜는 많이 웃어야 나중에 '웃상' 이 된다면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시청자로 보는 입장인데도 어쩐지 함께 눈물이 몽실해졌다.


나는 관상학을 믿지 않지만, 오래 살아온 어른들의 얼굴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올바르게 살아야 후에 나이가 들어서도 멋진 인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관상의 시작: 타인의 민감성이 높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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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민감성 (대인 민감성)
인간관계에서 타인의 언어적 비언어적 신호에 반응하는 민감성의 정도

나는 타인의 민감성이 높은 사람이다. 나는 타인의 감정선이 지나가는 선을 잘 캐치했다. 짧은 순간 내비쳐지는 숨기고 싶은 표정들이 잘 보였다. 보고 싶어 본 게 아니고 보였다고 생각했지만, 내 내면의 자아는 타인의 민감성이 높아 스스로 눈치를 보고 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거나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의 높이가 어떤가에 대해서 가늠하기 위해서 타인에 대한 탐구를 하고는 한다. 물론 목적이 모두 같게 사람들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관찰이라는 행동을 일으키는 태초의 감정은 '사랑'이거나 '질투'이었을 것이다.


옛날에 이러한 타인의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의 타인의 표정이나 말투 인상을 살피면서 '관상'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관상이라는 것은 얼굴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얼굴뿐만이 아니라 목소리, 걸음걸이, 기색 등 총칭으로 보는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기 위해서 관상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관상은 감정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람의 관상(인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의 발자국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이 웃을 일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웃음의 발자국이 남는다. 울 일이 많은 사람의 얼굴에는 슬픔의 발자국이 남는다. 결국 인상이라는 것은 감정의 발자국인셈이다.


삶을 살아오면서 지나온 감정의 발자국이 결국 얼굴에 남아 그것이 감정 그대로 골자가 되고 주름이 되고 자리를 잡아 사람의 인상을 만든다.


웃을 일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웃음의 감정이 발자국처럼 주름으로 남아 웃상이 되고, 울 일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울음의 감정이 발자국처럼 남아 '울상'이 된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말년의 인상은 온화함이 남고, 인생을 어렵게 살아온 사람의 인상에는 힘듬이 남아있다.


결국, 관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와요


사람의 얼굴은 태어나 3번 이상 바뀐다고 한다.

가지고 태어난 얼굴의 인상이 살아가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어쩌면 통계학적으로 나온 진실에 가까운 말일지도 모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예요"라는 말도 사실일지도 모른다. 뇌과학적으로도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나오는 뇌 호르몬이 기분을 좋게 해 준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내가 웃을 일도, 울 일도 내 마음대로 다 되지는 않는 일이다. 나의 중심 감정이 나에게 어떻게 자리 잡아 있느냐에 따라 어떻게 살아왔느냐. 혹은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일을 대할 때 웃으면서 한다.
그럼 나의 인상은 좋아진다.
인상이 좋아지면, 사람들은 조금 더 호의적으로 변한다.
나 또한 호의적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럼 기분 좋게 지나갈 일이 많아진다
웃을 일이 더 많아진다


이 모든 것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흘러간다. 내가 살아가면서 건네는 밝은 인사, 고마움의 표시, 감사의 표정 모든 것들이 내 얼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 반대로 짜증이 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해보면 주변까지 짜증의 여파로 물들 경우가 많다.


관상은 단순히 잘생기고 예쁘고 못 생기고의 문제는 아니다. 중후한 노인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는 결코 잘생기고 예뻐서 오는 인상만은 아니다. 예뻐도 우울한 사람도 있고, 못생겨도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다. 결국 '웃으면 복이 와요'는 상호작용에 의한 통계학적 증명인 셈이었다.


내가 느낀 감정이 내 얼굴이다


사람들은 10대를 잘 보내야 20대를 잘 보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고3 때 대학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 말을 10대의 대부분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20대를 잘 보내야 30대를 잘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이제 성인식을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스스로 느끼는 사람들도 반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30대를 잘 보내야 40대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반의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는 시간이 있어서 여자들보다 사회생활에 늦게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30대가 되어서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30대 후반이 되면 어느 정도 본인의 커리어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30대 중반을 넘기게 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가 나의 미래 얼굴을 만들고 있다는 것.

내 감정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것은 무서운 진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잘 우울에 잘 빠졌지만, 또 그 우울에서 잘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했다. 곧잘 짜증이 나고, 나보다 빨리 나아간 자들을 보며 한없이 무너졌지만, 또 가진 것에 감사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내가 머릿속에 막연하게 그리던 멋있는 중후한 중년 노인의 얼굴이 선명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36살, 내 관상을 내가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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