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으면 달리기를 잘할 수 있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lalageulp

1일 아침 운동화 끈을 고쳐 메고 나의 평생 동거인과 함께 밖을 나섰다.

마지막 달리기는 5년 전 마라톤 대회에서 뛴 10Km다.

새벽 수영으로 다져진 체력도 있으니 정말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달리기였지만 얼마든지 자신 있었다.


복잡한 마음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기에 운동만큼 효과가 좋은 게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물론 수영장 문이 열려 있었다면 달리기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을 거다.

한 달 전 수영장 리모델링 공사 중 불이 나면서 언제 다시 열린다는 소식도 없이 수영장 문이 굳건히 닫힌 마람에 달리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내 기분을 환기시켜 줄 강력한 행위가 필요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억울하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서류평가에 떨어져서 슬퍼하기에는 남들이 쏟는 열정만큼의 시간을 나는 보내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나는 하는 것마다 남들만큼 잘되지 않는 걸까?'

'이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맞는 걸까?' 하며 항상 마음속 의문의 흔적을 늘 남겨 둔다.


이 또한 하고 싶은 건 많은데 , 그렇다고 정작 내가 뭘 진짜 좋아하는지 몰라 대서양 한가운데서 홀로 열심히 노를 젓는 어른이의 입바른 투정에 지나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달렸다.

그냥저냥 기분전환 겸.


헛둘.헛둘.


오랜만의 첫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달리면서 머리를 식히자. 잡념을 날려버리자.


그런데 오히려 달리면 달릴수록 내 머릿속은 수만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차 버렸다.


일단 너무 힘들었다. 걷고 싶었고, 언제까지 달려야 하지? 끝은 나는 걸까?

왜 이 힘든 걸 하는 거야? 인생도 마라톤이라고 하더니 왜 매번 이렇게 앞에 놓인 무언가를 격파하며 나가야 하는 걸까? 난 아직도 멀었구나. 남들은 잘도 달리던데 쉬운 게 아니었어.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 거잖아. 중간에 멈추고 싶지 않아. 나는 이겨낼 거야. 끝까지 갈 거야. 저 사람들은 안 지치나? 달리기 하는 거 왜 자랑하나 했더니 자랑할만하네. 자랑하고 싶어지는 거 맞네. 운동선수들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걸까? 이것도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거야. 지금 내가 발맞춰 함께 뛰는 것처럼 부부도 함께 발맞춰 가는 거겠지? 한 명이 지치면 함께 늦어지는 거잖아. 끝까지 함께 해줘야겠어. 어쩌면 내가 하는 일들도 계속 달리고 있는 중이겠지? 그러면 멈추지 말아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계속 달려야 하는 건 뭘까? 무엇을 위해 달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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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달렸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이 생각들 덕분에 오히려 나를 끝까지 달리게 한 거 같았다.


달리는 동안 내내 앞을 쳐다보지는 못할 만큼 힘들었지만

땅만 바라보며 목적지까지만이라도 얼른 가자며 수많은 생각들과 함께 달렸다.


생각이 많으면 달리기를 잘할 수 있다.


수많은 고민들로 쓸 때 없이 생각만 많아진다면 일단 달리기를 해보자.

그 끝에 답이 놓여 있진 않지만 분명 내일 또 달릴 수 있는 힘이 생길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이 정리된다면 그때도 잘 달릴 수 있을까?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제는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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