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준비물을 못 챙겼을 때
새벽수영 일기 6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전날 수영가방을 미리 챙기는 꼼꼼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성격이다. 그래서 당일 새벽 집을 나서기 전 문 앞에 둔 수영가방에 수건을 넣어두고 털레털레 나가는 게 보통인데 그러다 보면 꼭 한 번은 무언가를 빠트리는 경우가 생긴다.
초반에 가장 많이 빠트린 물건은 바로 수건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까지 개운하게 하고 나왔는데 수건이 없는 경우 대략 난감하다. 수영모나 수경을 잊어버린 경우에는 분실함에 꼭 하나씩은 들어있기 때문에 직원의 허락을 받고 수업시간에만 쓰고 제자리에 두기도 한다. 하지만 수건의 경우는 목욕탕이나 헬스장처럼 비치해 두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남이 쓴 수건(스포츠 타월이면 모를까)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처음 수건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 와중에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 나갈지 고민했다. 수건을 찾는 동안에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르는 듯했지만 여전히 몸 전체가 축축한 상황이라 이대로 사물함까지 걸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얼굴에 스킨로션을 바르듯 온몸을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톡. 톡. 톡 두드리며 수분이 몸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거였다. 어딘지 모르게 수건을 안 들고 온 티가 나지 않으면서 내 모습이 꽤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름 이 방법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건조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 나아 보였다. 물론 머리카락의 물기는 걸레를 쥐어짜듯 짜내야만 어느 정도 물기가 덜 나왔기에, 머리카락이 다 뽑힐 듯한 아픔을 잠깐 견뎌 내야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수건 안 들고 온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물기를 말린 셈이었다.
한 번은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내가 써먹은 그 방법으로 몸을 말리는 회원분을 보게 되었다. 순간 '수건 안 들고 오셨나 보다'싶어 마침 스포츠용 타월을 들고 왔기에 난감했던 내 상황을 떠올리며 수건을 빌려드려야겠다 생각했다. 얼른 수건을 꺼내 드리려고 몸을 돌리던 순간 그분은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어 머리를 털어 내셨다.
'앗, 괜히 오지랖을 부릴 뻔했군'
수건을 들고 왔어도, 수분기 있는 몸을 위해 저렇게도 하는 분도 있구나 싶었다. 조용히 다시 스포츠 타월을 가방에 넣어두었다.
어쨌든 수건을 안 들고 왔을 땐 당황하지 않고 이 방법을 이후에도 간혹 써먹었다.
오리발을 안 들고 왔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연수반(중상급반)으로 올라가고 나서는 매주 월/금은 오리발, 수요일은 다이빙 연습이 추가되었다. 그중에서도 오리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시간 중에 하나다. 오리발만 있으면 수영 능력치를 3배는 더 업그레이드시켜주기 때문에 그날의 출발 순번이 앞번호여도 자신감이 상승한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 수업임에도 오리발을 두고 오는 경우가 있다. 분명 전날 신발장 앞에 오리발 가방을 두었는데도 비몽사몽 새벽에 나오다 보면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있었다. (정말 나는 왜 그럴까..)
다행히도 오리발을 두고 가는 사람들도 꽤나 있기 때문에 분실물 보관함에서 발에 맞는 오리발이 있으면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가끔 그것마저 발이 안 맞는 오리발만 남았거나 동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오리발 없는 사람은 줄 제일 뒤로 가야 한다.
오리발을 끼고 수영을 하면 발에 부스터를 달아 둔 것처럼 뻗어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오리발 없이 유영하는 속도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그래서 통행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줄 제일 끝에서 열심히 쫓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정말 허벅지가 터져 나갈 정도로, 웬만해서는 숨은 덜 쉬는 쪽으로, 대신 팔은 쉬지 않고 돌려줘야 한다. 이렇게 평소에 하는 수영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오리발 신은 사람들과는 2~3바퀴 정도 차이가 난다.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내 불찰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적당히 뒷사람과의 간격을 확인해 가면서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쉬어 주거나 이미 나를 따라잡은 뒷사람을 앞으로 보내줘야 한다.
오리발 수업시간에 오리발 없이 수영을 끝내고 나면, 나만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온 기분이다. 당연히 수영장을 돈 횟수는 매우 적다. 하지만 칼로리 소모량은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 뭔가 더 빠르게 수영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몇 번을 최대 에너지를 끌어올려 수영을 하다 보니 다음날이 되면 수영실력이 조금 늘어난 기분이 든다.
보통은 나처럼 이렇게 악착같이 수영을 하는 사람보다 준비물을 안 들고 오면 샤워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홀로 오리발이 없을 때가 제일 싫은데 그럴 때는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 잡은 수영을 빠지는 게 더 싫었기 때문에 꿋꿋하게 남아서 수영시간을 모두 채우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영장에 준비물을 잊고 오는 날이 빈번하진 않다는 거다. 그리고 이제는 준비물을 빠뜨렸을 때마다 어떻게 대처할지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그때마다 상황을 잘 헤쳐 나가기만 하면 된다.
인생에도 이런 가이드라인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가이드라인은커녕 챙겨야 할 준비물을 훨씬 더 많이 빠뜨리며 살아가는 기분이다. 나만 오리발 없이 헤엄치는 날처럼 다들 멋진 운동화와 구두를 신고 가는데 나 홀로 맨발로 걸어가는 건 아닌지 뭔가 하나쯤은 빠진 채로 하루를 살아가는 날이 훨씬 많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알려주거나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그대로 따라 하면 훨씬 나을 텐데 인생에는 그런 치트키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나 같은 사람은 맨발이어도 주저하지 않고, 부족한 걸음이라도 걸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수영실력이 조금 업그레이드 되듯 부족함 속에서도 애쓰고 헤쳐나간 하루가 좀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사실 수건이 없을 때나, 물안경이 없을 때나, 오리발이 없을 때나 실수는 내가 한 건데 어쩌겠나 수건이 없으면 손으로 말리면 되고, 오리발이 없으면 뒤에서 열심히 쫒아가면 된다.
마찬가지로 자꾸만 이게 부족하고, 저건 상황이 어렵다는 둥 오늘은 아닌거 같고, 다음에 해야할 것만 같은 날이 오더라도 없으면 없는대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