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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geulp Jun 05. 2024

물안경에 물이 들어갔을 때

내 인생이 뿌연 안갯속에 갇혔다는 생각이 든다면

새벽수영 일기 4


물 찬 물안경을 쓴 하루를 보내다가

대학교 동아리에서 스킨스쿠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이 바로 물안경에 물이 들어갔을 때 물을 빼는 방법과 물안경을 다시 쓰는 방법이다. 

평온한 바다 속임에도 물안경에 갑자기 물이 들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간 당황 하게 된다. 

사고는 방심하는 순간 일어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물안경을 벗고 다시 써서 물을 빼내는 과정을 수십 번 연습하는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상황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을 조장하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물안경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도 무섭다.


바다 속보다 백배 천배 안전한 수영장 물속에서도 물안경 없이 수영을 하는 건 고도근시가 안경을 쓰지 않고 거리를 걷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다이빙을 잘못하면 물안경이 벗겨지는 사태를 수없이 겪게 된다. 

기초반에서는 물안경이 벗겨지면 물안경을 고쳐 쓰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중급반이 되면 물안경에 물이 들어가더라도(벗겨지는 경우는 줄어든다) 뒷사람을 위해서 일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도착점에 들어와서야 물안경을 다시 고쳐 쓸 수 있다. 


무엇보다 물안경에 물이 들어오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감으로 헤엄쳐 나가야 한다. 

사실 오늘도 다이빙을 잘못하여 물안경에 물이 들어왔는데 일단 헤엄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꼭 내 삶 같아서 속상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무언가를 위해 시도하지만 제대로 한 것 같지 않고 딱히 성과도 없는데 어쨌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는 보내야 한다는 게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나 요즘 목적지를 향해 전력질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안갯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또다시 헤매며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레인 끝에서 물안경을 고쳐 쓰고 뒤를 돌아보니 '어? 나 제법 빨리 헤엄쳐 왔구나'를 알게 된 것이다.

분명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내 위치와 속도를 가늠하기가 어렵고 허우적대는 기분은 들었는데 오히려 속도는 더 빨랐던 것이다.

아마도 빨리 물안경을 고쳐 써야 한다는 마음과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마음이 맞물려 나도 모르게 속도를 더 내게 됐기 때문인 거 같다.

 재미난 사실은 이런저런 방법들을 생각하며 수영했던 것과 달리 지금껏 배운 영법들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자동반사적으로 수영을 하며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 순간 최근 불안했던 나의 하루들 역시 어쩌면 속도를 내기 위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안개가 걷히기 전에는 모르는 거야. 그러니 일단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는 거야.'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여전히 가장 어렵고 힘든 운동 중 하나가 수영이다. 그래도 수영을 놓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매일 헤엄을 치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하루의 동기부여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 @su0break

글 | 라라글피

(C) 2024. 라라글피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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