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나의 '벨 에포크'

by 한정선

인사동은 나의 젊은 날 추억이 서린 곳이다.

나의 첫 개인전을 비롯하여, 나와 화우들의 대부분의 전시가

그곳에서 열렸고, 그림 모임, 친구 모임, 그 외의 모든 만남도

인사동에서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처럼

인사동은 그 시절 나의 놀이터였다.

저녁을 차려놓고 이름을 부르며 찾으러 다니던 엄마는

안 계시지만 남편과 아이들 저녁 걱정에 서둘러 집에 올 때면

더 놀고싶은 아쉬움에 괜스레 억울해하기도 했다.

그 당시 인사동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나를 신비한

세계로 인도하는 마법같은 곳이었다.


인사동은 원래 문인과 화가의 거리였다.

안국역 입구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인사동 길에는

갤러리, 화방, 필방, 전통 찻집, 골동품점, 고서점점 등이 이어졌고

그 중간쯤 우리의 단골 약속 장소였던 ‘수도약국’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갤러리 관람을 마치고 갤러리가 문을 닫을 즈음,

사람들은 삼삼오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골목의 식당으로 몰려갔고,

한바탕 연회가 끝나면, 헤어지기 아쉬워 밤늦게 들어서는

포장마차에서 나머지 토론의 장을 펼쳤다.

그림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우리를 그토록 빠져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발산할 수 없었던 젊음,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작품, 안개 속 같은 우리의 앞날.

공통의 주제와 고뇌를 너그러이 받아주는 인사동은 품 넓은 동네였다.

이제 갤러리가 있던 자리에 현대식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문인과 화가 대신 관광객과 방문객이 밀려들고,

‘쌈지길’, ‘안녕 인사동’ 같은 새로운 거리가 조성되었다.

시대적 요구에 따른 신,구의 조화로 인사동은 새로움을 모색하고,

어쩔 수 없는 시장의 논리로 정체성은 흔들리지만,

지금도 그 입구에 서면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미드나잇 인 파리’주인공이 파리의 한 골목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타나는 차를 타고 1920년대의 파티장으로 가듯,

인사동은 나의 ‘벨 에포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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