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스케치 대신 지반(집 안) 스케치.

-감염병 시대의 슬기로운 집콕 드로잉

by 한정선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힘든 세 계절이 지났다.

매주 가던 엄마 요양원 방문도 끊기고, 도서관, 아파트 커뮤니티센터도 문 닫고 친구나 동생들마저 먼저 만나자고 할 수 없는, 졸지에 친구와 놀이터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이 신세가 되었다.

세상이 좁다고 돌아다니던 어반 스케치의 정모와 번개마저 없어지다 보니, 답답한 스케쳐들은 '슬기로운 집콕 스케치' '엣 홈 시리즈' '릴레이 드로잉' '지반 스케치' 등, 다양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SNS에서 그림을 공유했다.

현장과 그림을 같이 찍어서 올리는 것이 어반 스케치의 원칙이다 보니, 그림 뒤로 슬쩍 보이는 남의 집 부엌, 거실, 정원, 베란다, 살림살이 등을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그야말로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국제적인 랜선 집들이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평상시 별로 갈 데도, 오라는 곳도 없어 자가격리가 체질화되어 있는 나도 이런 초유의 강제적 격리는 혼란 그 자체였지만 낯선 일상과 그에 따르는 의식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소환과 복기.

옛날 사진을 뒤적이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도 하며, 미뤄 놓았던 숙제를 꺼내기도 했다.

비대면이 길어지면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스쳐 지나갔던 익명의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받았던 위로를 떠올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연대감과 유기적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에 갇힌 동물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듯, 아침에 일어나면 그릴 것을 찾아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집고 다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이 슬프기도 하지만,

그 덕에 태어난 지반 스케치들로 잠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서랍장..

서랍장은 수납과 거치대라는 이중성을 지녔다.

가구는 오래 쓸 생각으로, 유행에 상관없이 견고하고 조금 클래식한 것을 선호한다.

덩그러니 놓여진 서랍장이 휑해 보여, 여행지에서 사 온 목이 긴 병 몇 개를 올렸다.

침대와 책상만 있는 썰렁한 방에 온기가 돌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드레스룸.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드레스룸엔 드레스가 없다.

드레스룸은 걸어 들어가는 옷장이다.

우선 눈에 띄는 건 두꺼운 겨울 옷들.

겨울에는 여름을 생각할 수 없고

여름에는 겨울이 생각나지 않는다.

오늘이 좋으면 내일도 좋을 것 같고,

지금 좋은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은 종종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비는 갑자기 내리는 것이 되고,

불행은 예기치 못 한 것이라

슬픔은 두배가 된다.

어차피 미래는 미스터리,

이럴 땐 그냥 ‘카르페디엠’을 외치면 된다.

즐거운 착각 속에서.




책상..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예전의 6인용 식탁을 내방 책상으로 쓴 것은 신의 한 수.

벌써 25년째 동거 중이다

의자를 두 개 놓아 작업과 독서를 구분했는데, 어느새 뒤죽박죽, 그림에는 없지만 기역자로 책상을 하나 더 놓았다. 새책상까지 어질러질 듯한 불길한 예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소설 제목이 맞을지라도 일단 널어놓을 곳이라도 만들어 놓고 볼일이다.





조리대..

조리대는 그냥 명목상의 이름일 뿐, 쓰임에 따라 이름은 달라진다.

우리 집은 키 큰 와인 의자를 놓아 홈 카페로 변신.

아들은 얼. 죽. 아, 나는 쪄, 죽, 핫. 취향이 다르다 보니 캡슐, 드립, 콜드 블루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른 아침, 거실 창 너머 멀리 두런두런 도시가 깨어나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한 잔 커피로 덩달아 잠을 깨운다.



아들방.

내가 30년도 넘게 짝사랑해온 아들의 방.

예전에 유행하던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유명한 cf 대사처럼 . 내 사랑도 이제 움직이고 싶은데 (나이가 드니 사랑하기도 힘들고, 더구나 짝사랑은 더더욱 힘들다.) 바통 터치할 사람이 감감무소식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지만 때때로 계주 경기가 되기도 한다.

이 방이 없어질 날을 기다리며 한 컷 그림으로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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