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동네 친구다.

-도서관은 진화 중

by 한정선

도서관은 동네 친구다.

어린 시절 심심할 때 친구 집에 놀러 가듯, 도서관으로 마실을 간다.


도서관 창 밖 풍경. 색연필


친구에게 가는 길은 몸도 마음도 즐겁다.

일산에서는 정발산 숲길을 오르내리던 고양 아람누리가,

여기에 이사 온 후로는 홍제천변을 따라 걷는 마포중앙도서관이 친구 집이다.

운동화 신고 에코백 메고 타박타박 걸으며, 다달이 달라지는 자연 풍경은 덤이다.

사실 이사를 할 때 주변의 도서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역세권, 숲세권, 병세권과 함께 몰세권(쇼핑몰, 도서관, 문화센터 등)이 이사의 주요 조건으로

작용하는 요즈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운이다.

이제 도서관은 책의 대출, 반납이라는 고전적 역할을 넘어 강의, 강좌, 독서실, 영화 상영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멀티플렉스로 진화하고 있다.


도서관 창 밖 풍경. 수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넓은 창으로 여느 카페 못지않게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길게 이어진 내부순환로를 따라 백허그를 하듯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집들은 마치 아침 조례를 하듯

한 방향을 향해 서 있다.

작은 아이는 앞에 서고 큰아이는 뒤로 가고, 조례 시작 전, 키를 맞추느라 어수선한 모습 같기도 하고,

들쑥날쑥한 집들은 엄마 칠순 잔치 단체 사진 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부끄럼 많은 아이들 얼굴같기도 하다.

마침 월요일은 열람실 정기 휴관일이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없고

강좌, 카페, 식당은 열려 있어 에어컨은 빵빵하고. 작업실로는 손색이 없다.

하지만 작업실이 좋다고 작품이 잘 나오라는 법은 없는 법 .작정하고 계단에 살림살이를 풀었는데,

멍석 깔아주면, 하던 짓도 잘 못 한다는 옛말이 딱이다. (요즘은 옛말을 뒤집어야 맞다는데, 멍석 깔아주면 더 잘한다?)

조건이 완벽하니 슬슬 욕심이 생기는지 선에, 채색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열심’은 미덕일지니,

‘열심’을 부모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심심’한 고마움을.



내 방 책상. 펜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불안의 책 14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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