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혼돈 속에서.. 민들레가 들어왔다.

by 한정선

4월은 잔인한 달.. 너무 많이 회자되어 식상할 만 도한데 4월이면 어김없이 매체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직 그에 대적할 만한 명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4월뿐만이 아니라 5월, 6월, 7월.. 각각 그 달을 대표하는 수식어가 있지만, 느끼는 정서는 성별, 나이, 하는 일에 따라 달라지므로 각각의 달을 무어라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4월은 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달이고, 학생들에게는 모의고사,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며, 시인에게 4월은 소리 내어 읊기만 해도 시어가 되는 시심 충만한 달 일수도 있다.

하지만 4월은 눈에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땅이 풀리면서 몸도 마음도 느슨해져 크고 작은 물라적 사고가 유달리 많이 생기는 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또한 4.19를 시작으로, 근래에는 언급하기조차 끔찍한 참사까지 일어난 달이다 보니 4월은 마냥 들떠 지낼 수만은 없는,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가 와닿는 달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일까. 내게 올 4월은 온통 장난감으로 어질러진 아이방처럼 어수선했다.

이것을 해도, 저것을 해도 아닌 것 같은, 하나를 치우면 또 다른 하나가 자리를 채워, 뒤죽박죽 되어버린 머릿속에서 실체를 알 수 없이 공중 부양하는 생각들.

그 생각을 피해 책 속으로 숨었고, 허리가 뻐근해지면 봄햇살을 찾아 걸었다.

멀리서 보면 풍경, 가까이에서 보면 전쟁.. 내가 애용하던 이 문구가 이번에는 내게 딱 맞춤 말이 되었다.

남이 보면 태평성대, 내 머릿속은 전쟁터.

4월의 막바지, 어느 날 어질러진 생각 사이로 섬광처럼 민들레가 들어왔다.

민들레.. 민들레.. 화두처럼 머릿속을 맴돌던 민들레는 계절의 흐름 따라 홀씨가 되어 날아가 버리고 심드렁하니 없던 일이 되어가고 있던 차,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던 중 민들레를 만났다. 주변의 꽃들은 이미 졌지만 큰 나무의 그늘 덕에 아직도 생생한 그 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리서도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라’는 거창한 명제는 뒷전으로 던져두고, 일단 그림도구를 가지러 집으로 뛰어(엘리베이터를 타고. 마음만 뛰어서) 갔다.

내 게으름을 만회할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휘리릭~ 그리는 순간, 화두가 풀렸다.

면벽 수행하지 않아도 그리다 보면 스르르 풀어지는 화두. 참 소박한데 그게 힘들다.

복잡한 머릿속은 쉬운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화두는 민들레가 아니라 그림이었다는 간단명료한 사실조차..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위대하다.

모든 생명은 저절로, 우연히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의지와 갈망의 산물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은 정착한 장소에 적응하고, 종을 퍼뜨리기 위해 힘겨운 투쟁을 한다.

민들레도 홀씨가 되어 다음 생의 최적의 장소를 찾는 여행을 하는 건지 모른다.

알고 보면 놀랍고도 신비로운 식물의 세계.

이미 전성기를 지난 민들레의 뿌리에는 ‘생로병사’가 공존한다.

피고, 지고, 시들고, 홀씨를 만들고.. 민들레의 한평생이 고스란히 모여있다.

민들레는 이제 복잡한 내 머릿속을 떠나 가슴 한편 깊숙한 서랍에 넣어졌다.

가끔씩 꺼내보기도,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는 빗장 없는 서랍 속에서 민들레는 철을 잊은 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