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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Feb 16. 2022

오래된 새로운 이야기-빨래.

     

길을 가다 빨래가 널려 있는 풍경을 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진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아파트촌과 빌딩 숲을 조금 벗어나면 주택의 마당이나 베란다, 언덕을 따라 서 있는 집들의 옥상에서 가끔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볼 수 있다.

특별히 아름다운 경관도, 진귀한 유물도 아닌 빨래에 눈길이 가는 것은 머지않아 박물관에 소장될지도 모르는 흔치 않은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엄마 어렸을 때’를 거슬러 올라 ‘할머니 어렸을 때’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가 아는 빨래의 세계(?)는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누어진다.

결혼 전 친정집은 그 당시 대부분의 집처럼 여러 집이 세 들어 사는 다세대주택이었다.

세탁기도 탈수기도 없던 시절, 아침 일찍 좁은 마당은 빨래터가 되었고 빨래에 놀이터를 빼앗긴 우리는 발이 젖을세라 까치발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 부모들은 늘 ‘나가 놀아라’라고 하셨다. 집안일에 바쁜 엄마들은 좁은 집 대신에 골목길과 넓은 공터, 신작로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였다.)

삼각형 사각형 도형을 만들며 이리저리 얽혀있는 빨랫줄 위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가 걸쳐지면 우리는 숨바꼭질하듯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곤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새 집을 지으면서 세탁기가 들어오고 빨래는 넓은 옥상으로 거처를 옮겼다. c.f에서는 빨래를 널고 나서 ‘빨래 끝’을 외치지만 걷고 개는 것도 빨래의 과정, 사통팔달 옥상에서 한여름 땡볕과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고 뻣뻣해진 빨래는 거실 한가운데 던져져 작은 산을 만들고, 머금고 있던 햇빛과 바람 냄새를 천천히 내뱉으며 정신을 차린 다음 개고나서야 빨래는 끝났다.

결혼 후, 농촌 시댁의 빨래법은 또 다른 방식이었다. 도시 며느리가 못 미더운 시어머니는 시누이 머리 위에 빨래와 방망이를 얹은 다라이를 올려주고는 나를 딸려 냇가로 보냈다. 좁은 논둑길, 밭둑길을 졸래졸래 시누이 뒤꽁무니를 따라가다 보면 풀 숲 사이 개울이 나오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 신나게 방망이를 두드리며 '난타' 흉내를 냈다.

봄가을에는 살랑살랑 소풍 기분이 나지만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사역 나가듯 가기 싫었던 빨래터는 세탁기가 들어오면서 발길을 끊었지만, 볕 잘 드는 앞마당은 변함없이 빨래가 차지하고 있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평화로워 보이기도, 때로는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도 했던 빨래는 건조기가 나오면서 이제 그 모습마저 보기 힘들어졌다.

     

김포의 어느 들녘 비닐하우스 앞.

탁탁 호되게 털리고 집게에 콕 집히고도

빨래는 뭐가 좋은지 신이 났다

Shall we dance?

바람의 프로포즈를 받았기 때문일까?

                                        

일상의 고단함을 훌훌 벗어버리고

햇살과 바람의 냄새를 듬뿍 담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스스로를 위로하듯 축제를 즐긴다.


오래전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는 그림과 글을 보니 옛날 일기장을 보듯 새삼스럽다.

탈탈 털려서 집게에 꼭 집히고도 신이 난 빨래. 그때나 지금이나 빨래는 털어야 맛이지만

이제 건조기 속에서 털리고 말려져 나오는 빨래는 그 맛(?)을 잃어버렸다.

지금 아이들에게 빨래를 그리라고 하면 어떻게 그릴까? 널려 있는 빨래를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세탁기를 그릴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집 그림이 모두 아파트로 변한 것처럼.

     

오래전에 뮤지컬 ‘빨래’를 봤다. 검색해보니 지금도 대학로에서 장장 17년째 공연 중이다.

그 당시에는 배우들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좁은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큰 규모의 2층 공연장에서 하고 있었다.

‘얼룩 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헹궈버리자. 먼지 같은 걱정일랑 털어서 날려버리자’

‘빨래처럼 흔들리다 떨어진 우리의 일상이지만 당신의 젖은 마음 빨랫줄에 널어요 바람이 우릴 말려줄 거예요 당신의 아픈 마음 꾹짜서 널어요 털털 털어서 널어요 우리가 말려줄게요.'

서울 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의 힘들고 팍팍한 생활을 빨래에 비유해서 위로하고 치유해 나가는 내용인데 이 연극처럼 '빨래'는 동서고금, 여러 장르의 예술에서 모티브로 쓰였다.

또한 빨래는 과정만큼 확실한 결과물로, 정화, 카타르시스의 대표적 은유로 쓰이기도 한다.

빨래를 하다 보면 마음속 얼룩도 지워지고 문지르고 헹구다 보면 꽉 막혀 있던 가슴속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 그래서 우리 엄마들은 속이 시끄러울 때 빨래통을 이고 냇가로 가거나 큰 통에 이불을 넣고 꾹꾹 밟았을 것이다. 가사노동 중 제일 힘든 빨래가 이럴 때는 효자상품이 된다.     

빨래는 심리적인 면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볼거리가 되어준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동남아, 중국 대만 홍콩의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나 주택의 마당뿐 아니라, 중국, 유럽의 구도심에서도 도로 위 하늘 높이 펄럭이는 빨래를 볼 수 있다. 여행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젖히고 설치 미술을 감상하듯 빨래를 올려다보며 잠시 낯선 자들의 일상을 상상하고, 돌아가 펼쳐질 나의 삶을 떠올린다.

여행지에서 빨래는 눈과 마음의 풍경이 된다.

     

한때 우리의 일상이었던 풍경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라져야 기억되는 모순으로 빨래 또한 우리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에 빨래도 힘차게 펄럭이었음을.

힘든 노동 뒤에 숨어있는 '위로와 치유'라는 키치 퍼레이드를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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