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담당자와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조직문화 필독서
벌써 직장생활 인사쟁이로 15년차가 되었다. 다양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근무하며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인사업무 뿐만 아니라 법무, 회계, 영업, 경영전략 등 다양한 분야를 함께 병행해 왔던 나지만, 지금도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다면 "조직문화에 특화된 HR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2019년경 당시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해 한창 잦은 이직을 할 때였다. 당시 우연한 계기로 인사 분야의 대선배님의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그 강의에서 조직문화 파트를 상당히 중점적으로 다뤘던 기억이 난다. 그동안 내가 동일한 인사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회사에서 성과 창출을 위해 하는 일들이 각각 상이했던 점이 어쩌면 조직문화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던 것 같다. 그 강의의 끝무렵에서 본 책의 작가가 연구하신 내용을 상당부분 발췌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그 분이 우리나라 최고의 조직문화 전문가"라고 칭하더라. 당시 걸음마 수준에 가까웠던 나였기에, 해당 강의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도움이 되었었는데, '이런 훌륭한 강사님도 국내 최고의 조직문화 전문가에게 뭘 더 배우시는구나. 도대체 그 분은 누구란 말인가' 싶었다. 그렇게 나는 조직문화에 입문하게 되었고, 실무에서 조직문화를 5년간 접해 보면서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몸소 깨닫고 다시 이론과 원칙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유난히도 띄었던 책 이름과 함께 적혀있던 저자는 다름아닌 그 분(?)아닌가. 대한민국 최고 전문가가 쓴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과연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업에서 조직문화 담당자로 근무하는 분들은 물론, 조직문화에 관심이 있는 리더들이나 HR 담당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정말 훌륭한 책이다. 중요한 내용 위주로 간추려서 짧게나마 언급해 본다. 다만, 조직문화에 관하여는 개인적으로 큰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이기에, 책내용만 단순 요약ㆍ나열하기보다는 그 내용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들 위주로 요약하여 구성을 각색하고, 더불어 나의 생각을 함께 정리하여 기재해 본다.
조직문화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계실테니, 간단히 저자의 말을 인용해 필요성을 먼저 설명해 본다.
"그 강대국에 끼어 있는 우리 나라가 무엇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나 고민합니다. 이렇다 할 천연자원도, 관광자원도,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오로지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그래서 유치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많은 투자를 기울입니다.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토록 초롱초롱 빛나던 인재들이 사회로 나가 조직에 들어가면 낯빛이 어두워집니다. 이제 그들이 원대한 포부를 품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토양인 바로 조직문화를 제대로 고민할 때입니다."
(page 6)
종종 함께 일하는 구성원 중에서 서구식 조직문화('통제와 수평 기반의 조직문화'를 조직문화라 일컫지는 않기에,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서구 실리콘벨리 위주의 자율과 수평 문화를 떠올리면 된다)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관습에 맞지 않으므로 더이상 조직문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하다고 단언한다. "그런 한가한 거 할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하자. HR팀 요새 한가하니? 그럴거면 우리 팀이나 도와"와 같은 식이다. 나 또한 많은 조직에서의 경험을 통해 절대적으로 옳은 문화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보기 좋은 남의 것'을 베껴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위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위 작가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높고, 단순 노동이 아닌 지식 집약적 산업으로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 현대사회에서 과거 대기업과 공공기관으로부터 이어져 온 위계와 통제 등에 기반한 일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기업의 성장과 도약을 연결지어 상상할 수 있을까? 직원들에게 주도성을 부여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문제는 조직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겉할기 식으로 조직문화를 가볍게 접근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조직문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부 잘 아시겠지만, 조직문화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인 에드거 샤인은 조직문화를 인공물(artifact)과 표방하는 가치(exposed value),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으로 구분한다. 인공물은 눈에 보이는 표출되는 것들(사무실의 배치, 호칭 방식, 근태/원격근무 등), 표방하는 신념은 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경영이념, 인재상, 일하는 방식), 기본 가정은 자원(인적자원을 포함)과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는 무엇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매출vs고객, 돈vs인간, 과학적효율vs인간존중 등)에 관한 다소 철학적인 질문이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초기 조직문화 도입에 관한 국내 사례 중 상당수는 단순히 인공물을 변화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직급제도를 간소화하고, 닉네임이나 'ㅇㅇ님'으로 호칭하고 재택근무를 도입하며, 조금 더 나아간 기업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명문화하여 포스터로 붙인다.(그러나 그런 식으로 내건 '일하는 방식'은 사실 주민센터 구석에서 볼 수 있는 '복무강령'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나, 빙산의 일각만을 건드리고 정작 중요한 기본 가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에, 그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임원을 "스캇님"으로, 대표를 "스티븐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나에게 임원이고 대표이기 때문에, 대화할 때 직원이 아닌 핵심 경영진에게 예의에 어긋날 수 있는 것들을 나도 모르게 필터링하게 되는 분위기라면 어떻게 될까? 호칭이 어떻고 사무실 배치가 어떻고 하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되려 부작용만 커질 확률이 높아지고 만다. "나와 타인은 같은가, 다른가"와 같은 기본 가정을 바꾸는 것도 사실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일진데, 기본 가정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히 보여지는 제도만을 바꾸는 행위는 되려 구성원들의 혼돈과 비효율만을 가져올 뿐이다. 탱크를 신식으로 바꿨는데, 그 안에 들어갈 탄포와 탱크를 운용하는 병사들은 여전히 구식인 느낌이랄까. 어쨋든 그 때부터는 "수평으로 바꾸니 일이 안돌아간다" "이럴거면 수직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고, 조직 내의 권위주의자와 기회주의자들이 언행에 힘을 갖게 되며, 이에 실망한 나름 고성과자들은 조직을 떠나고 만다. '조직문화'는 그렇게 오늘도 죄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큰 인사이트를 얻었던 부분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흔히 "전략에 적합한 조직문화가 있다"고들 합니다. "전략에 맞도록 문화를 바꾸어야 해. 조직문화 변화 방안을 수립해 봐." 이 같은 이야기는 문화를 전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관점입니다. 문화를 '발목' '걸림돌' '장애요인' 등으로 표현합니다. 마치 전략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도로 간주하는 문화는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로 취급한다고나 할까요?"
(page 32)
우리나라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서구의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업무 추진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데이터는 확인했나요?" "이런 변수는 고려했나요? 이런 케이스도 함께 체크해 봐야 하지 않나요?" 와 같은 식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대기업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 얼마나 많은 임직원들이 (책임 소재를 찾거나 일을 떠넘길 때) 회사의 프로세스와 R&R의 부재를 탓하며, (소통과 협업이 안될 때) 논리성과 업무 환경을 부르짖는가.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저 또한 스스로를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타입의 인사담당자라고 자처하곤 한다. 단지, 조직문화는 이성과 논리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성적이며 로지컬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 분들이 대개 "일잘러"로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조직문화를 이렇게 이성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것이 과연 올바른 판단일까? 만약 그런 식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책에서는 월트디즈니를 앞선 픽사의 사례, 휴렛페커드와 애플의 사례를 들면서 이에 대한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경고한다. 과거의 월트디즈니와 휴렛페커드는 누가 뭐래도 각 분야의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된 매우 유능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디지털 애니매이션으로의 전환과 퍼스널 PC로의 전환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성적' '논리적'으로 판단한 끝에 변화를 거부하였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다. 앞서 언급한 회사와 비교군의 회사들의 흥망은 실제로 어떠했는가? 휴렛페커드의 내부 사정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다행이도 월트디즈니의 경우 (물론 수십년 전 일이지만) 그들의 뼈저린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담당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창조와 혁신의 아이콘을 자처하고 그러한 분위기를 조직 내에 조성함으로써 과거의 명성을 어느 정도는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얼마전 디즈니 리더십 수업이라는 책의 서평에서 짧게 언급했던 바 있다) 이외에도 코닥과 후지필름의 사례라든지, 노키아와 삼성전자 사례 등을 비추어 보았을 때, 조직문화와 전략 중에서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시대적 흐름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문화 절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page 104) 이른바 서양식 "자율과 수평의 조직문화"라는 것이 (전시의 위계질서가 중요한) 군 조직이나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추구되는) 원자력발전소에도 맞는 것일까? 이는 전부 앞서 설명한 기본 가정 없이 단순히 '다른 좋아보이는 것들'을 따라 해서는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조직문화를 세팅할 때 고민해야 할 기본 가정에 대해서는 저자께서 작성한 브런치 포스팅과 가이드북(전자책)에도 아주 상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두번째로, 다른 인사제도와의 alignment를 섬세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인간은 모두 동일하다는 기본 가정에 따라 수평적인 조직도와 서구식 사무실 배치, 호칭 등을 세팅해 두고선, 특정 직급 이상에게만 법인차량을 제공한다거나 특정 복리후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특정 직군만을 옹호하는 제도를 만들거나 단순 노동직(사무실 청소, 배송, 기타 허드렛일)의 명절 선물을 챙기지 않는다면? 그러한 곳에서는 올바른 조직문화가 설 자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관점을 추가로 고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은 그들과 유사한 사람을 유인(attraction)하고 선택(employment)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점차 배제(discharge)시키는 경향이 있다. 책에서는(page 88)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의 기고 내용을 언급하며 '동질 사회의 재생산'이라는 재밌는 표현과 더불어 채용제도의 복제품(clone) 양성에 관한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와 컬쳐핏이 맞는 사람을 뽑는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분들을 보셨을 텐데, 이 때 컬쳐핏이라는 단어를 나와 성향이 비슷한 팀원을 뽑는 것으로 착각하는 리더들이 더러 있다. 즉, 채용이나 해고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우리 회사의 문화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기준에서의 다양성은 용인되어야 하며, 어떤 경우는 용인될 수 없는가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정립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터득한 지식의 가치 ★★★★★ (업무 뿐 아니라 개인의 기본가정을 만드는 계기가 됨)
HR 담당자 관점으로서 얻은 지식의 가치 ★★★★★ (90%의 확신을 100%까지 끌어올려 준 결정적 계기)
논리적인 전개, 오탈자 등 전반의 완성도 ★★★★★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편향되지 않아서 더욱 좋았음)
이 책에서 새롭게 얻게 된 지식의 활용도 ★★★★☆ (다시금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
조직문화에 관한 내용을 워낙 폭넓게 기술한 책이다 보니, 내용을 전부 요약할 수는 없었지만 언급한 내용 외에도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성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차이 학자마다 다양한 조직문화의 정의, 조직문화와 조직풍토간의 차이, 몇년 전 유행했던 권력거리나 심리적 안전감에 관한 이야기, 정보공유와 투명성이 조직문화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객관적으로 상세히 풀어서 설명했다.
책 리뷰를 쓸 때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은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서평을 쓰지 못했던 것은, 누군가가 이 포스팅을 보았을 때 진심으로 내용이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물론 내가 과연 이 책에 대해 논할 수준인가에 대한 부끄러움도 한 몫 했을 터이다.
저자께서는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앞으로 10년 뒤 이 책을 보면 아마도 부끄러워 몸서리를 칠까봐 두렵다고 언급하셨는데, 나는 이 책이 10년 후에도 조직문화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모든 이의 기본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관련된 업무를 하고 계시다면 반드시 이 책을 필독할 것을 아주 강력하게 권해 드린다.